기반암(bedrock)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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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올 예수님(믿음) 48

내 자신이 우상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가 3/6) 원래 이 대목은 BC 6세기경 바빌론에 잡혀갔던 유대민족들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얘기하는 예언입니 다.(이사 40/3-5) ‘모든 사람이 주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내용으로, 작자인 루가가 이것을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로 변경시켜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요한 세례자를 ‘모든 사람이 보게 될 하느님의 구원’을 준비하는 인물로 소개하며, 어조를 볼 때 그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로 세례를 선포하는 요한 세례자의 외침은 더욱 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도 오신 까닭이나 깃든 ‘신의 초월성’을 알고 접근한 사람은 없었으 므로 얼마나 고독하였을까? 그 때에는 ..

하늘나라가 그곳에 있다.

‘생명’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고 산성화된 토양과 얕은 산들이 계속하여 이어지는 곳. “아, 이런 곳이 말로만 듣던 광야로구나” 예수님이 수행을 위하여 가셨던 광야는 이런 풍 광일 것으로 생각된다. ‘나’를 넘어서고 없애버리고 무시하는 곳, 여기서 탄생하는‘무한대의 우주’를 깨우쳐 인식하는 곳. 이런 곳이 광야의 무대 모습일 것이다. 바람의해 생성된 모래 지평선이 끝없이 계속되는 보통의 아라비아 사막과는 다르고, 조금은 거칠고 순조로운 대륙이다. 광야지대는 이런 단조로움과 메마름이 상존해 있을 것이다. 산 중턱부 조그마한 공간마다, 빈터가 있는 계곡마다, 수행처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유명산 수도사가 있는 곳마다‘나름 수도자’들이 들락거릴 것이다. 예수님 시절에도 광야에서 수 도하는 여러 공동체들이 있었..

그 분은 진정 신을 품은 인간이었다.

그분께서는 과연 인간의 아들이었을까요? 아님 하느님의 진정한 외아들일까요? 2000년 전 중동 베들레헴 지역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셨던 예수님의 외견 모습도 현재의 아랍인들 같 이 저런 모습이었을까? 이렇게 생긴 얼굴에, 저런 피부색깔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출생은 단연코 충격, 그 자체이었으니 말이다. 처녀상태의 어린 마리아께서 예수님 을 잉태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에 결혼식은 양가의 집안이 서로 합하는 것이었고, 그 래서 결혼 상대자도 양가 집안의 어른인 부모님이 대부분 결정했다. 당대에는 집안의 명예 를 목숨만큼이나 중요시했고 결혼 전에 처녀가 임신을 하였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 다. 임신한 여자는 돌에 맞아 죽는 게 집안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

들보 뽑는법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계셨던 예수님은 당초에는‘그저 그런 평범한 인물’이었다. 유대 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을 ‘나사렛에 사는 촌놈’정도로 여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지로 처음에는 예수님은 그저 시골에서 자란 촌뜨기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다. 예수님은 수천 년간 내려오는 유대법을 제멋대로 지키지도 않고, 유대인들이 우리의 ‘화냥 년’정도로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몸을 파는 매춘부나 간음하는 여인들 을 보살피는데 앞장만 섰으니 참 한심하기가 그지없었겠죠. 실지적으로 ‘들보가 박힌 눈’으로 보는 유대인들 입장에게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는 말이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절에도 ‘메시아’라고 자청하는 자들이 많았나 봅니다. 자기가 남의 눈 에서 ‘티끌을 뽑아주겠노라’라는 자들이 있었으니 예수..

13사도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 어머니 헬레나는 소아시아의 드레파눔에서 250년경 태어난 것이 확실하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의 장군인 콘스탄씨우스 클로루스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 콘스탄틴이 태어났다. 그러나 남편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안의 의붓딸인 테오도라와 결혼하였다. 막시미안이 사망하자, 그의 휘하 군인들이 콘스탄틴을 황제로 모셨고, 그는 그 의 어머니께 아우구스따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크리스챤이 되었는지는 불확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 칙령을 반포케 하여 로마 제국 내에 그리스도교를 인정하 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게 되었다. 그 후에 성녀는 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으며 오래동안 성지에서..

그리스도께서 내 맘 속에 산다.

당시에 모세가 유대인들을 데리고서 이집트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인 가나안으로 왔 다. 하지만 현재의 예루살렘이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중동지역은 적어도 가나안 땅이 아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낙원이자, 약속의 땅인 젖과 굴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는 그들은 벌써 그 땅으로 와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게 되는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유월절이 다가 왔으므로 분위기가 들떠 있을 쯤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 안으로 걸어가신다. 시각의 강 물은 과거, 현재와 미래를 흘러가는데, 예수님께서는 ‘신의 초월성’을 밑바탕에서 하나의 약 속된 일인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정오쯤에 우물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마리아 여인께 예수님이 주..

말씀은 씨앗의 메시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죽고 사는 사람들로 이들이 율법을 어긴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하는 것도 율법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들이 아는 엄마의 잔소리쯤으로 듣지 않고 스스로 신과 맺은 구원의 약속으로 알고 그대로 이행한다. 신과의 약속인 계명은 유대인에게는 나이가 13세면 준수하는 연령이 됩니다. 율법 준수는 육신과 맘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 이들은 행동이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신으로부터 구원받을 수가 있는 유일한 길이자 방도로서 영혼을 구원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지 주로서 작용을 한다. 율법학자인 유대인들은 예수님께로 와서 ‘제자들이 식사 전에 왜 손을 씻지 않습니까?’ 하자 ‘너희들은 전통을 핑계로 삼아서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가? 어..

용서

예수님과 제자 일행은 최후 만찬을 나눈 집에서 나와 도보로 약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올리브 산으로 갔다. 올리브산 중턱 어디쯤엔가 도착하시자, 예수님은 ‘오늘밤에 너희들은 내게서 돌아서 갈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는 ‘나는 결단코 예수님과 같이 하겠다’며 오로지 예수님만 생각하며 변치 않을 것을 예수님 면전에서 맹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와 주위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한사코 부인 하였다.  예수님은 똑딱 똑딱 다가오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알고 계셨으리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더 높은 곳인 겟세마니에 도착했는데 그때에나 지금이나 공동묘지가 너부러진 장소이다. 이제 예수님은 결정에 순간에 도달 하신..

하느님 집에서 월세로 사는 것이 영성이다

예루살렘 도성 안에 있고, 둥근 황금빛의 지붕으로 지어진 올리브 산 위 성전은 이슬람인의 성전이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우선 천막으로 성막을 치고 그 안 중앙에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설치해 놓아둔 성전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가 바로 하느님과 대면하고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이렇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후 나라를 세우고 성을 쌓고 성전을 축조했을 것이다. 유대사회의 중심이자 핵심 장소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함께 와서 아무도 올라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에 오르시어 초라한 모습 그대로 낮추어서 들어 가셨다. 당당하고 위엄스럽게 멋진 말을 타시지 않고 겸손과 보통의 상징인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무한히 낮추신 신의 모습이었다.  제자들과 몇몇 추종..

그리스도께서 내 맘속에 산다

당시에 모세가 유대인들을 데리고서 이집트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인 가나안으로 왔다. 하지만 현재의 예루살렘이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중동지역은 적어도 가나안 땅이 아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낙원이자, 약속의 땅인 젖과 굴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는 그들은 벌써 그 땅으로 와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게 되는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유월절이 다가 왔으므로 분위기가 들떠 있을 쯤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 안으로 걸어가신다. 시각의 강물은 과거, 현재와 미래를 흘러가는데, 예수님께서는 ‘신의 초월성’을 밑바탕에서 하나의 약속된 일인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정오쯤에 우물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마리아 여인께 예수님이 주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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