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암(bedrock)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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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올 예수님(믿음)/믿음 39

그리스도께서 내 맘 속에 산다.

당시에 모세가 유대인들을 데리고서 이집트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인 가나안으로 왔 다. 하지만 현재의 예루살렘이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중동지역은 적어도 가나안 땅이 아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낙원이자, 약속의 땅인 젖과 굴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는 그들은 벌써 그 땅으로 와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게 되는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유월절이 다가 왔으므로 분위기가 들떠 있을 쯤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 안으로 걸어가신다. 시각의 강 물은 과거, 현재와 미래를 흘러가는데, 예수님께서는 ‘신의 초월성’을 밑바탕에서 하나의 약 속된 일인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정오쯤에 우물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마리아 여인께 예수님이 주..

말씀은 씨앗의 메시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죽고 사는 사람들로 이들이 율법을 어긴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하는 것도 율법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들이 아는 엄마의 잔소리쯤으로 듣지 않고 스스로 신과 맺은 구원의 약속으로 알고 그대로 이행한다. 신과의 약속인 계명은 유대인에게는 나이가 13세면 준수하는 연령이 됩니다. 율법 준수는 육신과 맘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 이들은 행동이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신으로부터 구원받을 수가 있는 유일한 길이자 방도로서 영혼을 구원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지 주로서 작용을 한다. 율법학자인 유대인들은 예수님께로 와서 ‘제자들이 식사 전에 왜 손을 씻지 않습니까?’ 하자 ‘너희들은 전통을 핑계로 삼아서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가? 어..

용서

예수님과 제자 일행은 최후 만찬을 나눈 집에서 나와 도보로 약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올리브 산으로 갔다. 올리브산 중턱 어디쯤엔가 도착하시자, 예수님은 ‘오늘밤에 너희들은 내게서 돌아서 갈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는 ‘나는 결단코 예수님과 같이 하겠다’며 오로지 예수님만 생각하며 변치 않을 것을 예수님 면전에서 맹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와 주위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한사코 부인 하였다.  예수님은 똑딱 똑딱 다가오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알고 계셨으리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더 높은 곳인 겟세마니에 도착했는데 그때에나 지금이나 공동묘지가 너부러진 장소이다. 이제 예수님은 결정에 순간에 도달 하신..

하느님 집에서 월세로 사는 것이 영성이다

예루살렘 도성 안에 있고, 둥근 황금빛의 지붕으로 지어진 올리브 산 위 성전은 이슬람인의 성전이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우선 천막으로 성막을 치고 그 안 중앙에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설치해 놓아둔 성전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가 바로 하느님과 대면하고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이렇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후 나라를 세우고 성을 쌓고 성전을 축조했을 것이다. 유대사회의 중심이자 핵심 장소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함께 와서 아무도 올라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에 오르시어 초라한 모습 그대로 낮추어서 들어 가셨다. 당당하고 위엄스럽게 멋진 말을 타시지 않고 겸손과 보통의 상징인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무한히 낮추신 신의 모습이었다.  제자들과 몇몇 추종..

그리스도께서 내 맘속에 산다

당시에 모세가 유대인들을 데리고서 이집트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인 가나안으로 왔다. 하지만 현재의 예루살렘이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중동지역은 적어도 가나안 땅이 아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낙원이자, 약속의 땅인 젖과 굴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는 그들은 벌써 그 땅으로 와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게 되는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유월절이 다가 왔으므로 분위기가 들떠 있을 쯤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 안으로 걸어가신다. 시각의 강물은 과거, 현재와 미래를 흘러가는데, 예수님께서는 ‘신의 초월성’을 밑바탕에서 하나의 약속된 일인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정오쯤에 우물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마리아 여인께 예수님이 주시는..

이제 하느님 뜻에 따르렵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닿는 대로 자꾸만 흘러가면서 내 마음은 내뜻대로 살아가려고만 합니다.예수님은 ‘내 뜻’과 ‘하느님 뜻’으로 둘로 나누었고, 아버지의 뜻대로 복종합니다.“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요한복음 6/38)”“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대로 하십시오.(마태오복음 26/39)”예수님은 ‘내 뜻’대로가 아니고 ‘하느님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흘러가도록 가만히 두신 것이죠?예수님은 아버지 대한 전적인 의탁의 의미에서 가만히 지켜보시면서 . . . ‘내 뜻’의 내 자신의 자아를 되새겨 봅니다.‘내 뜻’을 비운 내 마음은 이제 ‘하느님’의 뜻..

주여! 저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를 지어내신 하느님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을 뵌 적도 없습니다. 인간이기에 못 본 것에 대한 뿌리 깊지 못한 나약함 때문일까요? 끊임없이 좌절과 고통을 맛보고, 끊임없이 예수님께 다가가려는 존재! 주여! 당신이 사랑인 저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요? 하느님이 어디에 계신지, 하느님과 저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하느님과 장막은 얼마나 두터운 것인지 . . . . 그러나 저는 아직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겠나이다. ‘빈자(貧者)의 성녀(聖女)’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님의 공개되지 않았던 편지중에서, 테레사 수녀님은 ‘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사랑이었던 저는 지금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의 신앙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계신다. ‘하느..

예수님을 따라(글을 쓰며)

믿음이나 신앙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들 사이에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실제로 자연이란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한 인간한계를 인식함으로서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에게 의탁하고픈 맘이 생기니까요.각설하고, 내가 가톨릭교인이 된 이유로 나는 매일 매일 겁에 질려 살았습니다. 모든 일에 겁이나, 심지어 보이는 것들과 자연에게서도 겁이나 겁에 질려 참 비겁하게 살았죠. 늘 겁이 없이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내가 오늘 죽더라도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싶어 성당을 찾았죠.자기를 버려 무한대로 낮추어 진공상태로 만들고, 자아를 죽이고서 세상을직시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서도, 우리 이웃도, 예수님도, 하느님도 다시 보이기 시작하죠. 이렇게내에게 ‘무언가 있다가 이제..

'예수의 제자' 책을 쓰며

믿음이나 신앙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들 사이에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실제로 자연이란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한 인간한계를 인식함으로서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에게 의탁하고픈 맘이 생기니까요.내가 가톨릭 교인이 된 이유로 나는 매일 매일 겁에 질려살았습니다. 모든 일에 겁이나 겁에 질려 참 비겁하게 살았죠. 늘겁이 없이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자기를 버려 낮추어서 진공상태로 조정하고, 자아를 죽이고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성서도, 우리 이웃도, 하느님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이런 자기조절적인 행동들이 내게도 과연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까? 참으로 요원한 얘기지요!!!나에게 애시 당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는데‘무엇인가 있다가 이제는 없구나.’ 이런 부재감정 때문에 ‘아나스타시오[아나+스타시오(아나: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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