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암(bedrock)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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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올 예수님(믿음)/믿음

내일을 근심하지 말아라

고지중해 2023. 1. 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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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지사 다 똑 같다. 2000년이 흐른 지금도 미래를 근심하며 현재에 애착하는 것이 인생
이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 모습을 향해 ‘근심하지 마라’라고 얘기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생명이 먹는 식사보다 중요하고 육신이 걸치는 의복보다 중요하지 않느
냐?”라고 얘기하셨다. 우리는 오늘도 어떤 식사를 하지? 어떤 옷을 입어야 멋있지? 라며
고민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거두어 곡간에 모으지도 않는다. 하느님께서 새보다야 더 귀하게 여기지 않겠느냐?”(마태
오6)


우리들은 왜 이리 걱정에 억매여 사는 걸까? 그건 아마도 인생 삶이 유한성 때문이지 아닐
까요. 무슨 특정 사유로 어디에서 언제쯤에서 우리들의 인생은 종료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
에 사로 잡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근심하지 마라, 담장에 핀 개나리꽃도 근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
은 살아가기가 어렵고 지쳐 내일을 걱정합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아이고
믿음이 없는 자들아’라며 잘못을 꾸짖습니다.


우리는 가을이 외롭고 겨울이 겁납니다. 하지만 한편에서 보면 죽어 없어짐만큼 필요한 것
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부터 태어나심을 인정하나 메
시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큰 차이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외아
드님을 땅으로 내려 보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시자인 무하마드를 선지자로 보고 이
슬람교가 태생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들 안에서 숨어 계시는 맘속의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그래야 예수님이 살아계셔 숨을
쉰다. 이렇게 하려면 필요하다는 것이 내가 죽어 사라짐입니다. 우리들의 고집이나 애착들이
무너져 내릴 때에, 즉 가을이 되어 외롭게 될 때에 숨어 계시던 예수님은 기지개를 켜시고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가을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들 속에 그리스

도 예수님과 함께 동거할 수가 있고(갈라디아서2/20)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면하게 될 수도
있겠죠.
우리들의 근심이 이렇게 크고 깊은 데에 어떻게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겠습니
까? 근심의 바위덩이를 브레커로 깨에 내어야 합니다. 포크레인으로 근심을 퍼서 버려야겠
죠. 그래야 대지는 평평해 지고 논과 밭으로 개간이 되겠죠. 이렇게 자기의 죽어감이, 자기
의 가을됨이, 애착들이 없게 됨이 자기 십자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오는 자들만이 자격이 있다고 자격
증을 주었습니다(마태오10/38). 작은 잎새는 나무 가지에 붙어 있다는 걸 알겠습니까? 자기
만 알며 광합성을 하느라고 자기가 인간들에게 빛을 가려주는 행위를 하는지도 모를 뿐만이
아니라 나무등치와 가지들의 가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잎의 입장에서는 늘 나무 전체는 보지 못한다는 거죠. 물론 나무 생명과 관련된 뿌리의
실체도 모르겠죠. 큰 나무를 볼 때에 한그루의 나무등치와 뿌리가 주인공인데 하찮은 잎새
는 그저 걱정에만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근심을 합니다. 겨울은 날씨가 춥겠지. 돌풍이 불면
많이 흔들리겠지. 가을이 오면 어떻게 하지. 이번 가을에 떨어지면 죽는데.
잎새는 자신이 가을을 느끼고 있으며 자기가 죽어감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주
인공이 아니고 큰 나무를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러면 가을은 즐겁게 되고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겨울이 되어도 내가 떨어져 낙엽이 되어도 나무는 그냥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내일이 되어도 아무런 근심을 갖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맘의 실체란 탄생하였다가 영향을 미치고 소멸되는 존재이다. 우리들의 맘도 잎새와 같아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잎새는 새순이 되어 나왔다가 푸르게 잘 자라고 붉게 물이 들어 낙
엽이 되어 땅으로 떨어져 뒹굴게 됩니다. 이렇게 잎새가 죽어야 큰 나무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 근심하는 우리 잎새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이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일을 근심하지 말거라(마태오 7).
주님! 주님! 외쳐 은총을 받으려고 하지만, 마음을 길들이는 법을 아직 잘 모르고 있어 은총
을 받을 수가 없죠. 자아를 성서말씀으로 던지고 아주 싹 갈아 녹여 먹어 봅시다. 이럴 때에
성서 말씀이 원래 뜻대로 술술 풀려 나옵니다.
예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은 숨을 들이쉬면서 주님을 받아 들여 회개하고, 숨을 내쉬하면서 음미
와 공경을 받쳐야 은총을 받을 수가 있다. 주님의 소리를 들으려면 회개와 참회로 나의 못된 악
습과 바탕을 버려야 하나 진공상태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비워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내 인생의 철로 위에서 고요함의 소리도 들린다. “현재까지 내 열차는‘고
통’인 줄 알았어, 내 삶의 철로도 그대로, 강물도 그대로, 지나는 산도 그대로네” 내 마음
만 ‘지옥’이었네. 마음을 비우니 모든 전경 전부가 보이네. “강물도 보이고, 황소 울음소
리도 들리고, 바람의 느낌도 다가오네.” 이제야 내 열차는 알아먹습니다.
열차 자체는 나이가 있어 수명이 있죠. 그래서 인생철로의 종점에서 모두가 없어짐을 알죠. 열
차는 포기합니다. 난 오직 ‘소멸’을 향해 종착지로만 달리는구나. 이렇게 인생 종점을 알고
있는 열차는 철로 위를 덜커덩 덜커덩 계속 굴러가는 거죠.


지금도 움직이는 내 열차는 “내 철로의 종점을 향해 달리는 게 아니고‘지금, 이 순간’을
달리는 거구나.”라고 알려면 자신을 완전히 비워 소진해야 된다는 거죠. 그렇게 해야 지금
하느님의 사랑에 경탄하고 도취되는 체험을 느끼며 살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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