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암(bedrock) 세계

nugget

Nugget-story

사랑하올 예수님(믿음)/믿음

진정한 안식일

고지중해 2023. 1. 22. 19:46
728x90
반응형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란 어떤 날인가? 구약성서의 출애굽기(35)에 보면 ‘안식일에 어디에
도 불을 피우면 안 된다‘고 되어 있어 안식일에는 요리는 못하고 그저 식사만 하는 날이
다. 또 안식일에는 유대인들은 자가용 차량운전도 일이어서 못하는 걸로 되어있다.
안식일에 비가와도 천막을 치는 일이나 우산을 쓰고 가는 일도 같아서 비를 그대로 맞고 움
직여야 한다. 유목민인 유대민족은 지붕으로 천막을 치고 소떼나 양떼를 몰고서 오랜기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한다. 지붕인 천막을 치거나 걷는 일은 일상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먼 곳의 여행도 가지 않고 가정에서 빈둥거리며 그야말로 푹 쉬면서 안식일을 지킨다. 그래
서 안식일에 차로 운행을 하면 돌팔매질을 하거나 마을입구에서 막아 세우는 경우가 있다.
싱크대 앞에서 가스불도 피우지 못하고 냉장고 문은 아예 잠가놓는다. 왜 이렇게 유대민족
은 안식일을 중요시하나. 이유는 하느님과의 언약이기 때문인 것이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지고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로 이때에는 귀밑머리 깨끗하게 감고
서 길게 하여 검은 모자를 쓴 전통적인 유대인의 모습들을 자주 볼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안식일이 금요일임으로 이날에 점포나 회사의 문을 닫는 무슬림이 많다. 우리 가톨릭은 안
식일이 일요일임으로 예루살렘에서 나온 세 개의 종교의 안식일이 서로 각각 다르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율법 중의 율법이 있다.
다름 아닌 안식일을 거룩히 보내라는 십계명은 하느님으로부터 모세가 받은 계명으로 절대
적인 규정인 것이다. 만일에 안식일 규정을 어기면 구약성서 출애굽기(35)에서 ‘안식일에
일하는 이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로 표시될 정도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안식일에 등이 휜 여자를 고쳐주게(루가13) 되는데 이 사건은 일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회당장이 이걸 보고 크게 진노하며 ‘일하는 날이 6일이나 있는데 왜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며 예수님께로 항의를 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여자는 사탄에 묶
인채로 18년 동안이나 투병하였는데 안식일이라 해서 못 풀어줄 사유가 어디에 있겠느
냐?’고 하신다. 그래서 유대 율법학자는 안식일을 어긴 예수님을 처단해야 할 사람으로 보

았다.
멈추시지 않고 예수님은 손이 오르라든 이, 눈이 먼 이들을 계속하여 고치신다. 율법학자들
은 회당으로 와 죽치고 기다린다. 그리고 예수님께 ‘왜 하느님과 언약 일인 안식일을 지키
지 않소.’라고 따지고 든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좋은 일은 안식일에
해도 무방하다. 목숨을 얻는 것이 더 좋지 않느냐!”(마르코3)
율법학자는 안식일을 지키느냐, 안 지키는가를 중요시하며 따질 때에, 예수님은 ‘인간을 살
려 내어야하느냐, 죽도록 놓아두어야하는가.’ 가 관심사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지 않는가?‘ 라며 나무라신다. 요즘에도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십계명이나 율법에
입각하여 삶을 살아간다.


예수님은 마음의 안식을 주는 복음서가 마태오 11에 있다. “고생하여 짐진 자는 내가
안식을 준다. 멍에를 멘 자 안식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할 때에 안식
과 마주하는 걸까? 가톨릭의 영성핵심을 말하면 그건 ‘순명적인 항복’이다. 예로 겟
세마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뜻에 맡깁니다.’라고 하신 뜻은 ‘순명적인 항복’인
것이다.
우리 인생길은 좌회전해야 할지 우회전해야 할지 아니면 직진해야 할지 늘 갈림길에 처해
있다. 이때에 “아버지 뜻이 함께 하소서”하며 모든 걸 내어맡기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마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속까지 편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바로 평화인 것이다.
역사에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살아왔다. 자연에 대해서도 육년간 농사에 종사하
고 칠년 째에 아예 씨를 뿌리지 않으며 안식년을 엄숙히 지켰다. 농사를 짓지 않는 1년을
위해 그 전해까지 2년치 농사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식일을 위해 전날 먹을 것을 준
비를 해두는 것과 같은 형식이다.


안식일, 안식년 전부가 ‘7’과 관련되고 7년이 7회 지나면 49년 + 다음해는 희년이라며
희년에도 농사일에 종사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2년간 농사일을 쉬었다. 희년이 되면 부족
간 전쟁에 패해서 노예로 살던 이를 풀어주어 가족으로 보내주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진 빚
도 탕감해 주어 모든 것을 당초대로 되돌려 놓았다.

구약성서 처음 말씀에 빛, 밤, 하늘, 땅들이 생겨나고 해, 달과 별도 생겨난다. 하느님께서 6
일간 창조하시고 7일 째에 안식하며 쉬셨다. 8일째에 무엇을 하셨다는 얘기가 없으므로 6일
째에 종료됨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없이 계시는 하느님’은 하늘, 땅, 해와 달
을 창조하였으며 온 우주를 관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신의 초월성’에 맞춰 인간을 지어 내셨다. 그래서 이 우주를 창조하셨던 하
느님의 성품은 일부지만 인간들에게도 그대로 함께 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에 보면 감정
조절하도록 창조를 하였고 생각들로 번민하도록 창조를 하였고 멋진 아이디어를 창조하
도록 하였다. 이것들은 하느님 창조의 성품이 내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나도 조절, 번
민,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신의 초월성’의 이용 방법을 몰라서 짐을 만들고 이것들이 누적되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무거운 짐’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안이
바로 나 자신의 ‘셑팅’입니다. 아침에 밥 먹으면서 떠 오른 슬픔을, 오전에 화장실에서
생각한 화를, 저녁때에 죽을 정도로 패고 싶은 녀석을 셑팅하라는 것입니다.
6일간 창조시킨 나의 사고와 집착과 고집 등을 7일째에는 내 마음을 셑팅하라는 것이 바로
‘안식일’의 깊은 뜻일 것이다. 이런 안식일을 지키며 ‘신의 초월성’으로 돌아가자 것이
다. 셑팅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의 성품으로 돌아가 반성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이런 반성하는 것이 안식일이라면 유대인들은 2000년 전에 ‘사형’시켜야 한다고 하였던
예수님을 단죄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먼저 자신들은 ‘나는 6일간 창조된 죄는 전부 셑팅
하였는가?’ 반성부터 하여야 했을 것이다. 하느님이 삼라만상을 창조했듯이 우리들도 매일
매일의 하루를 창조하고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듯이 ‘안식일’은 두 개의 측면을 갖고 있는데, 첫째가 유대율법의 장애물체이고 둘째
는 신의 창조 본바탕으로 우리들은 과연 어느 편을 택해야 하나. 우리들은 예전의 유대인들
과 같은 안식일을 보내는 건 아닌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우리들도 안식일 때에 성당에 나간 것으로만 따지거나, 안식일 때에 편안하게 쉬기만
하면서 따지는 일에만 열심히 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나간 6일 동안
우리들이 창조시킨 많은 감정이나 집착들에 관해 반성작업도 없이 말이죠. 안식일에
진정한 안식이 빠져버린 날로 인하여 또다시 예수님을 죽이고 있지는 않나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  잘 보셨으면  "좋아요" 부탁해요?  010-3816-1998. 감사함다. -----

 

728x90
반응형
사업자 정보 표시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