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떻게 우물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을까? 우물물을 길어다가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첫 이적사화로 요한복음에만 나오는데 무대는 잔치 집이었다. 예수
님과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참석한 것으로 봐서 예수님의 친인척이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흘째 되는’ 즉 안식일이 토요일임으로 화요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화요일에 치르는 결혼식을 상당한 길일로 여겼다.
현재의 유대인들의 생각은 “결혼은 축복의 날이고 화요일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첫 이적행위가 나타났기 때문에 ‘더블 럭키 데이’라 칭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손 없는 길일인
셈이다.
유대인들 혼례에서 포도주로 축하손님들을 모신다는 것은 혼주들에는 소중한 일이었다. 혼례
잔치를 하던 중에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를 다 먹어서 떨어진 것을 전해 준다. 예수님은
우물의 물을 길어다가 물독 속에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런 후에 바로 손님의 잔치상으로 가져
다 주어라고 하신다. 잔치상 위에 놓으니 손님들은 이집에 맛 좋은 포도주가 맨 나중에 나왔
어요.’(요한 2/6~10)라며 칭송을 한다.
‘예수님의 포도주 이적사화’는 쟁점일 수도 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한
다는 것은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독생자이시라 해도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후대에서 이적일화로 추가된 사실과는 무관한 얘기로 반박할 수도
있으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신의 아들로서 초자연적인
힘을 보여 자연의 이치를 훌쩍 뛰어넘는 진정한 메시아임에 틀림없다는 가톨릭 신자들의 얘
기이나,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물음표가 달리수도 있겠다.
성서에서 보여준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이적사화는 우리에게 특별하게 무언가를 던집니다. 그
시대를 살던 유대인들의 신앙과 전통 속에서는 막연한 ‘하늘나라’에 대해 추측은 있었고
이런 추측에 대비하고자 또는 예수님이 혹시라도 ‘하늘에서 오신 신’이 아닐까 싶어서
‘이적행동을 보여라’라는 종교적인 배경이 깔려있었겠다.
그럼 이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들은 그게 바로 ‘하느님의 징표’라는 겁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니 이런 능력은 당연스러운 것이죠. 그러나 이런 이적들과 예수님의 영적부활이 진실이
냐? 거짓이냐? 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 하였느냐”를 묵상할 수 있다.
베드로가 믿음이 약해져 두려움이 생긴거죠. 이런 두려움의 근원은 일상생활의 그 바닥에는
어김없이‘나’라는 자아 혹은 에고가 삶의 위험을 느낄 때면 항시라도 솟아오릅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와 물 위를 걷는 베드로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차이점은 두려움인데
요, 이렇게 믿음이 약해지면 ‘자아’, ‘나의 사랑’이 생깁니다. 이러면 예수님의 마음에
서 보다 멀어지게 되는거죠.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일화를 볼 때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약했던 베드로가 물에 빠짐은
두려움 때문으로 이런 두려움은 바로 자기 자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아가 솟아
올라오면 바로 예수님의 숨결에서 멀어져간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제일 큰 이적행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맹물을 맛 좋은 포도주로
바꾼 것도, 맨발로 물 위를 걷는 것도 아니죠. ‘자아’와 ‘나의 사랑’로부터 멀어질 때에 즉
‘나’를 비운 곳으로 밀려오는 예수님의 숨결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큰 이적이 아닐까요?
구약성서에 보면 모세가 양치기를 하다가 호렙산으로 올라가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제
젖과 꿀이 있는 땅 가나안에 인도할 것이니 이집트에서 구해 나오너라”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
의 음성을 들었으나 사람들이 믿어 줄까 싶어 걱정하였으나 하느님이 대비책을 주셨다.
“나일강의 물을 떠 대지에 부어보아라, 그러면 바로 피로 변할 것이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게 강물을 떠서 대지에 붓자 바로 피로 변하는 것을 보자 믿게 되었다. 이와 같이 물을 이용해
다른 것으로 변화시킨 것은 예수님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처럼 모세의 기적에도 ‘피의 징표→
구원’으로 생각하였음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징표에 대한 요구가 강렬한 것 같았다.
왜 예수님은 이 땅으로 오셨을까.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삶의 지표로 삼고 삶의 목적이 무엇
인지 알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면 물이 포도주로 된 사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예수님의 이적사항을 볼 때에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1800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이래서 이적사항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신약성서 가운데 딱 요한복음서에만 기재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내용은 색깔이 없는 무
색의 물을 붉은 액체인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의 첫 이적사화다. ‘세상 모든 것은 그분
없이 생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씀이 사람으로 되시고 우리들과 사셨다’처럼 ‘그
분’을 통하여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는 물을 포도주로 변모시킨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듯 하느님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인간의 육신
을 입고 우리가 사는 땅으로 오셨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샘물을 포도주로 변화시
킬 수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맘속의 우물에서 매일 샘물을 길어 올리며 그 우물물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피로 되어 아프기도, 포도주가 되어 취하기도, 기쁨의 눈물이 되기도, 가슴 아픈 슬픔이 되
기도 한다. 이게 우리 맘이다. 내 맘의 우물이 없으면 희로애락의 감정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샘물이 포도주화 되는 것만이 신비로움일까? 아니고 우리 맘에서 올린 샘
물이 갖가지 마음으로 변하는 것도 신비로움이다.
2000년 전에 잔치 중에 먹을 포도주가 떨어져 황당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가장 필요했던 포
도주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일상에서 여러 가지의 마음으로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필요할 때에 그때에 맞게 마음을 조절하여 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포도주로 만드는 이적현상을 보고서야 따르게 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들은 초보적인‘이적행위의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신의 초월성 예수님’을 믿는 것
이 당연한 귀결현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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