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소금’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부분이 있다. 소금을 마음에
간직하고 평화롭게 지내라.(마르코 9/50)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맛을 잃게 되면 무엇으
로 짜게 하겠느냐? (마태오복음 5/13)
짠맛을 내게 하는 것에 소금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짠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런 쓸모
가 없다고 강조하신다. 그래서 ‘세상에서 소금처럼 필요한 곳에 쓸 만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얘기 하신다. 그리고 왜 ‘소금을 마음에 간직하라’라고 하였을까요?
늦가을 철에 김장을 담을 때에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는 과정이 있다. 밭에서 온 배추 잎은
살아있는 상태로 뻣뻣하여 자기 고집과 자아에 차 있다. 소금으로 절어지면 뻣뻣한 잎은 풀
이 죽어 시들시들해 진다. 이렇게 고집과 자아는 소금에 의해 무너지고 녹아든다. 이런 현상
에서 자신이 열리고 열린 틈으로 소금에 의해 짠맛을 내게 된다.
이렇게 소금으로 절여진 배추는 짠맛으로 인하여 상하지도 않고 오랜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다. 이것이 변함이 없고 오래 갈수 있는 진짜 짠맛은 ‘신의 초월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고 예수님은 이걸 잃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가 ‘짠맛’을 잃는 것은 ‘신의 초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므로 ‘신의 초월성’을
품고서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마지막 최후를 맞이하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는 장면의 다빈치의
그림을 살펴보자. 예수님을 은화 서른 닢에 팔아버린 가롯 유다(왼편에서 네 번째)가 보인
다. 유다의 오른편 소매 앞에 소금통이 넘어져 있는데 이는 바로 짠맛을 내는 소금으로
‘신의 초월성’을 엎질러버린 것과 동일한 짓거리로 그려진 것이다.
물론 그림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나 우리도 소금통을 엎질러버려 소금통에는 소
금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등대 불은 ‘가난하고, 깨끗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자’들로서 여기에 마음을
다하여 합치를 이루면서 그 위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함께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내 마음속의 등대 불이 켜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
다’라고 말씀하신 거다.
우리들 안에 있는 빛은 어둠 속에서 있지나 않나 살펴 보거라(루가 11/34). 대다수의 사
람들은 육체를 중요시하고 ‘육안으로 보이는 것’들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
기의 육체가 아니고 보이는 안목에 신경을 쓰라고 얘기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안목이
맑아야 육체도 맑아진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들 안목이 마음속을 밝혀 ‘환함’인지,
‘어두운지’지 살펴보라는 말씀이다.
큰 강이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둘로 나누어 놓고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물의 얼마나 차고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하지만 한 조각구름과 같은 육체가 쓰러짐과 동시에 우리는 그 강을
건너야 하지요. 우리들의 믿음을 통해 낯설고 두렵고 슬픈 큰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인간 세상살이에는 이렇게 죽음의 큰 강이 있는가 하면 수시로 흐르는 작은 강들 수백 개가
눈앞에서 흘러갑니다. 그 강이 바로 ‘애착의 강’인데요, 우리는 이런 애착을 꺾으면 내가
바로 죽을 것 같아 쉽게 포기하지 못하죠.
그러나 한번만이라도 건너 본 사람은 계속적으로 강을 건널 수가 있는데요, 강을 경계로 저
편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행복의 땅이 존재하는 거죠. 강을 건너 저편의 나는 행복을 알고
춥고 고달팠던 순간들은 행복시간으로 녹아듭니다. 세상은 갈수록 빨리 다람쥐 쳇바퀴와 같
이 변화하며 계속적으로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이렇게 빠르고 변화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변화를 읽어 행복을 느껴 볼 수 있는 안목을 키
울 수가 없으며 또한 절대로 강을 건너지도 못합니다. 이런 통찰의 눈을 가져야 세상을 바
로 볼 수가 있는데 말이죠.
너무 많은 양념과 조리법 때문에 삶의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고 니맛도 내맛도 아닌 희한한,
밍밍한 인생 맛을 느끼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눈’은 이치에 대한 안목으로 세상을 사는 이치 이것이 ‘하느님의 초월성’이
다. 신약성서를 통해 예수님이 설명하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치인 것이다. 신의 맘
과 우리들 맘이 소통하려면 우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간직해야 하고 이럴 때에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 마음은 ‘산상교훈’에 ‘깨끗한, 가난한, 자비로운 마음’에 관하여 설명하셨듯이
우리들의 눈이 세상을 볼 때에 이치를 설명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떤 마음의 등대 불을 켜
야 깨침이 일어나고 깨우침을 통해 눈이 맑아진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우리들의 삶의 가이드라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오늘도 내 마음속에 등대 불이 하나가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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