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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올 예수님(믿음)/성서

마르코 복음의 시대적 이해

고지중해 2023. 5. 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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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이란?

¶. 마르코 복음서는 어떤 책인가요?

마르코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 다음에 나오는 신약성경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에 관해 처음으로 기록된 복음서로, 다른 복음서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메시아 비밀’이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 안에서 밝혀지는 생생한 증언록입니다.

¶. 누가 썼나요?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들은 내용을 충실하게 기록했다’고 밝힌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빠삐아스(60-130년경)의 사료와 신약성경에 나온 기록들(사도행전 12장 12절.25절; 필레몬서 1장 24절; 콜로새서 4장 10절; 티모테오 2서 4장 11절; 베드로 1서 5장 13절)을 근거로 하여 바오로의 협조자요, 베드로의 통역가였던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설이 있었지만, 편의상 마르코를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지칭할 뿐, 실제로 누가 마르코 복음서를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가 히브리어와 아람어, 유대인의 풍습과 이방인의 풍습을 잘 알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학계에서는 해외문물을 익힌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마르코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누구를 위해 쓰여졌나요?

마르코 복음서는 팔레스티나가 아닌 외국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생각하며 기록했다고 추정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할 때, 그리스어로 그 뜻을 풀이하고 있습니다(3,17; 5,41; 7,11.34; 15,34 참조). 그리고 ‘유대인들의 관습’(7,3-4; 14,12; 15,42)과 ‘팔레스티나 지리’(1,9; 11,1)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집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11,17)이라 하고,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7,28)이나 백인대장(15,39)을 신앙인의 모범으로 내세우는 등 이방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 보입니다.

¶. 언제 쓰여졌나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13장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기원후 7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압제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66년-70년경) 결국 실패하였고, 70년에는 예루살렘마저 함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관한 마르코 복음서의 본문이 예언인지 아니면 일어난 일에 대한 보도인지에 따라 마르코 복음서의 기록 시기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나요?

마르코 복음서는 모두 16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1,1)의 기쁜 소식이 역사적인 인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에 따라 크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안에서 밝혀지는 메시아 비밀’과 수난과 부활 예고 뒤에 이어지는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두 주제를 중심으로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8장 29절) -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안에서 밝혀지는 메시아 비밀 : 이는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신자들은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해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나무라시며 아무에게도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이러한 ‘메시아 비밀’은 악령들(1,25.34)이나 치유받은 병자들(1,44; 5,43)과 제자들(8,30; 9,9)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과 예수의 말씀과 신분을 자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지(4,13.40; 6,52; 7,18; 8,17)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9,9)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메시아 비밀’은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온전히 드러납니다. 시종일관 수난 중에 침묵하셨던 예수님이 대제관 앞에서 마침내 자신이 그리스도요, 사람의 아들이심을 선언하심에서(14,62) 메시아가 체포되어 수난당하고 계심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백인대장이 그분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15,39)으로 언급한 것도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예수님과 십자가의 깊은 관계를 느끼게 해줍니다. 복음서 시작 때부터 고백되어 온 ‘하느님의 아들’(1,1)은 이제 ‘비천한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순간에 비로소 감추어진 예수님의 신비가 밝혀지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완성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8장 34절) - 제자들이 가야 할 길 : 이 말씀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신분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더욱더 예수님을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수난과 부활 예고‘를 하십니다(8,31; 9,31; 10,33-34). 그리고 당신과 수난과 부활 예고 뒤에는 언제나 제자들이 당신을 따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와 조건이 함께 제시됩니다. 즉,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8,34)한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9,3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10,45)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세의 영광과 안일한 삶에 유혹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깊은 의미를 던져줍니다.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14,36)라고 기도하는 예수님의 비통한 마음을 함께 느끼지 못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처럼(14,50),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베드로가 스승을 모른다고 잡아뗐던 것처럼(14,66-72),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 쉽게 십자가를 외면하곤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들려주십니다.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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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의 시대적 이해

 

1. 신약성서의 시대적인 소명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마음먹고 일관된 체제로 쓴 단일저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여려 양식으로 쓴 글을 모은 일종의 ‘총서’이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듣고 공동체를 이룬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 부활 이후 성령의 비추심을 받아 그분이 하느님의 결정적인 계시임을 깨닫고 고백하면서 이를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처지에 있던 각 공동체는 성령에 힘입어 그들이 전해 받고 기억하고 있던 예수님 사건과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고, 그들이 지녔던 구약성경을 예수님의 빛으로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남아 있는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처음 기록된 성경은 예수님 사건이 있은 지 20년 정도 지난 다음인 51년경에 써진 ‘데살로니카 전서’이다. 그 다음에 나타난 신약성경은 60년대 후반~80년대에 쓰여진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오로계 서간, 히브리서, 베드로 전서 등 몇몇 공동서간 따위이다. 제일 늦게 형성된 신약성경은 80~100년경에 쓰여진 요한 복음서등 요한계 문헌과 90~130년경에 쓰여진 베드로 후서 등의 일부 공동서간이다. 그러니까 신약성서는 대략 51년부터 130년 정도에 걸쳐 쓰여지고 모아졌다. 그 중에는 무슨, 무슨 복음서와 행전, 묵시록 등 동인한 문학양식으로 쓰여진 문헌들도 많았다. 그 숱한 문헌들 가운데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로의 편지 13통은 2세기 말경에 이미 교회로부터 경전으로 인정받았으나, 현재의 신약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그리스도교의 근본경전으로 결정된 때는 4세기에 들어서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신약성경의 원본은 전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사본들뿐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사본의 종류는 5366개에 달한다. 이들 중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본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본에는 다소간의 오차가 있다. 이 차이를 면밀하게 살펴 가장 원문에 가까운 본문을 찾아내는 것이 ‘본문비평(원전비평)’ 방법이다. 본문비평이 발전하면서 ‘네슬-알란트판’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연합성서공회에서 펴낸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신약성경의 번역대본으로 채택되고 있다.

2. 마르코 복음서의 르네상스

오랫동안 전례나 일반 성경 인용에서 도외시되던, 찬밥 신세였던 마르코 복음서가 부각된 것은 흥미롭게도 본격적으로 성경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한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다. 초대교회부터 네 복음서가 내용과 구조면에서 앞의 세권과 끝의 한권(요한복음서)으로 완연히 구분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격이 비슷한 앞의 세 권을 묶어 ‘공관 복음서’라고 부르는데, 이는 공관(共觀), 곧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복음서가 내용뿐 아니라 말마디까지 똑같은 부분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가 먼저 기술되었고 이를 요약한 판본이 마르코 복음서라 여겼다. 그러나 현대의 여러 비평방법을 통해 꼼꼼히 따져보니 마르코 복음서가 네 복음서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이 점차 분명하게 되었다. 다른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와 각각의 특수 자료를 모아 재구성한 작품임이 밝혀졌다.

3. 마르코는 누구인가?

2세기 교회의 상황은 오늘날 외경이라 불리는 베드로 복음서, 토마 복음서, 필립보 복음서 같은 성경들이 많이 읽히고 있었다. 또한 150년경 소아시아의 마르치온이란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설정하고 편집하여 정경목록을 만들기도 하였다. 170년경에는 타시아노가 네 복음서를 하나로 짜집기한 예수님의 전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에 당황한 교회는 믿을만한 성경을 교회의 권위로 확정해야 했다. 그렇다면 성경을 쓴 사람에 대해 규명하는 게 필요했다. 그 사람은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가? 그가 의지한 자료의 근본출처는 어디인가? 그 출처가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과 직결되지 않으면, 일단 그 신빙성에 의문부호를 붙였다. 그렇다면 마르코는 믿을만한 사람인가?

2세기 초반에 소아시아에 있는 히에라폴리스 주교 파피아스는 5권짜리 ‘주님말씀 주해집’을 펴냈다. 그는 자기 책에서 요한이라 하는 원로에게서 자주 들었다며 이렇게 증언했다.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자였다. 그는 순서에 따라 하진 못했지만, 그가 기억한 주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하고 주님과 동행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베드로와 연결되었다. 베드로는 주님의 사목에 대해 남김없이 펼쳐놓을 뜻이 없었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알려주었다. 그 결과 마르코가 최선을 다해 기억하였지만 불충분하게 썼다 해도, 크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로부터 그리스도교는 베드로의 통역자인 마르코를 이 복음서의 저자로 여기고, 이 사람을 바오로 사도의 동반자였던 예루살렘의 유대계 그리스도인인 요한 마르코(사도 12,12.25; 13,5-13; 15,37-39; 골로 4,10; 필레 1,24; 2디모 4,11)와 동일시하였다. 그렇지만 파피아스의 증언은 당시의 이단적인 사조에 대항하여 가장 오래된 복음서를 옹호하려는 호교론적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서 역사적 근거가 약하다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성경의 내용을 통해 마르코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팔레스티나 이외의 지역 출신의 유대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여러 그리스도교 전승을 충실히 수집하고 통합하여 복음서라는 새 양식을 창안한 탁월한 신학사상가라 할 수 있다.

마르코는 사자로 표현된다. 이레네오가 네 복음사가를 묵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묵시 4,7)에 비유한 뒤, 페타우의 빅토리노가 3세기에 펴낸 주해서에서 복음사가들을 다음과 같은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사자(마르코), 사람(마태오), 황소(루카), 독수리(요한). 마르코를 사자에 비긴 까닭은 마르코 첫머리에 실린 이사야 예언자의 외침이 마치 사자의 울부짖음 같이 힘차다는 뜻이다.

4. 마르코 복음서의 탄생 배경

성 예로니모는 파피아스의 증언을 인용해 “베드로가 이야기하면 마르코는 받아 적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의 영감이 비단 그 성경 저자 개인뿐 아니라 그가 모아 편집한 각종 전승의 형성 변모에 영향을 미친 공동체의 모든 이에게까지 미쳤다고 넓게 본다. 성경이 성경 저자 개인의 독자적인 작업의 결과라기보다, 그가 속한 공동체의 절실한 필요성에 의해 공동체의 품 안에서 배태된 것이 성경저자의 창의적인 작업을 통해 드러났다고 보게 되었다. 마르코 복음서는 어떤 처지에서 복음서 기록을 하게 되었을까?

오늘날은 그 집필시기를 70년경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마르코 13장에 드러난 예루살렘 멸망 사건이다. 66년부터 시작된 유대인들의 독립항쟁은 결국 처참한 학살과 예루살렘 성전의 소실, 도시의 파괴로 마감되었다. 민족과 국가의 대파국을 눈앞에 두었거나 체험한 직후에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혼돈과 슬픔에 빠졌다. 이 모든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두 갈래로 박해를 받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로마 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민족주의적 열정에 휩싸여 있던 동족 유대인으로부터는 독립항쟁에 참여하지 않은 배반자로 낙인찍혀 배척받았다. 사실 팔레스티나에 살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전쟁 때 피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요르단 강 건너편 펠라로 피난가 직접 전쟁의 학살을 피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를 종말로 여기는 사람이 나타나는가 하면, 거짓 그리스도나 예수님의 교리를 잘못 가르치는 거 짓 교사가 속출하였다. 바로 이러한 혼돈의 시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마구 흔들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참된 하느님이자 참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바로 알리며, 예수님에 대한 공동체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그 고통을 의연히 견디며 끝끝내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로 살게 하기 위하여 복음서를 썼다고 추정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보전이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를 보면 가장 부각되고 강조되는 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신이나 신적 인물이 자청해서 ‘실제로’ 고난을 받고 죽는다는 것은 극히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구원과 생명을 가져다주시기 위해 수난 받고 죽으셨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짜로’ 죽으셨다는 가현설(假現說)과 같은 거짓 가르침과 다른, 초대교회의 변치 않은 가르침이었다. 그런즉 제자들이 그 수난의 길을 따라 걷는 것, 고통과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할뿐더러 의당 해야 할 일이다. 덧붙여서 지금 겪는 재난이나 전쟁 같은 사건들을 종말사건으로 여기는 사이비 가르침에 혹하지 말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5. 마르코 복음서의 문학양식과 구성

예수님 사건이 발생한 지 한세대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각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저마다 전해 받은 단편적인 예수 전승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런 전승들이 떠돌아다니는 선교사들을 통해 교회 사이를 흘러 다니면서 서로 결합되어 전승 덩어리가 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마르코는 이러한 여러 전승들을 모아 단순히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이를 자신의 신학적 의도에 맞게 새롭게 구성하고 재해석한 독창적인 저술가였다. 그는 역사적 사건으로 전체 틀을 짜 전승의 흐름을 잡고, 큰 단락 사이에는 연결 어구를 넣고, 단편전승들을 모자이크 식으로 통합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설명구를 넣어 하나의 체계적인 이야기로 서술하였다.

마르코는 이 복음서를 읽기위한 ‘독서용’ 책으로 구성하지 않고 공동체에게 들려주기 위한 ‘낭독용’ 책으로 구성하였다. 이를 위해 듣는 사람이 좀 더 잘 알아듣고 오래 기억하도록 간결하고 대중적인 문체로 기술하였으며, 동시에 같은 것끼리 묶고 선명한 이미지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마르코 복음서는 해답집이라기보다 문제집이다. 창조주 신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묻고 또 묻는다. 당시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서를 읽는 독자 모두가 이에 질문을 받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13,37) 그 답은 각자의 삶에서 드러나고 고백될 것이다. 대답하고 또 다시 묻기 위해서 우리는 또 다시 복음서를 읽는다. 계속되는 질문과 대답 속에 예수님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6. 마르코복음서 내용과 시대적인 상황

마르코복음의 내용은 갈릴래아에서의 예수 활동(1,1-8,26), 예루살렘 가는 길(8,27-10,52),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고난과 죽음(11,1-16,8)으로 구분된다. 지리적 거점은 갈릴래아와 예루살렘 두곳이다. 마르코는 예수활동 전체를 갈릴래아 시대와 예루살렘 시대로 나눈다. 갈릴래아 시대는 준비하고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고 사람을 모으던 시기였다. 예수에게 갈릴래아는 고난의 땅이었고 예루살렘은 저항의 땅이었다.

갈릴래아 활동 시절 예수의 주요한 적대자는 바리사이였다. 약6,000명으로 추정되는 바리사이파는 주로 평신도로 구성된 엄격한 신앙인 조직이다. 성직자에게만 요구되는 규칙을 평신도까지 생활화하고 단식, 기도, 선행, 성서공부에 열중하며, 로마에 대한 독립투쟁에 앞장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자기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예수는 이런 종교적인 교만에 빠진 바리사이파를 비판한다. 바리사이파의 양대산맥은 힐렐학파와 삼마이학파이다.

예루살렘 시기의 예수의 주된 적대자는 원로들(유력 가문 유지들)과 대사제들(고위 성직자), 즉 정치․경제․종교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세력인 사두가이파였다. 예수 체포와 처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자들이 제관들과 이스라엘 상류층으로 구성된 사두가이파다. 사두가이파는 “조상의 전통”이라는 율법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후 삶도 부활도 천사의 존재도 믿지 않고 오직 모세오경만 받아 들였다. 그런데 이들은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로마군대의에 몰살당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서기전 63년부터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예수 생애는 옥타비아누스와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에 속한다. 서기전 6년부터 유대, 사마리아, 이두메아, 예루살렘이 직접 로마 정권에의 통치에 들어간다. 예루살렘은 로마 총독과 헤로데 가문 왕의 모호한 공동체 지배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66년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로마에 대한 무장항쟁을 벌어지고 70년에 이스라엘은 멸망한다. 이를 “유대전쟁”이라고 부른다. 유대전쟁(서기 66년-70)이 벌어지자 로마군에 패배하여 많은 유대인이 죽고 다쳤으며, 유대 군벌 사이의 내전이 계속되었다. 독립전쟁으로 패망하고 베드로, 바울로을 비록한 지도자들이 모두 죽고 예수 제자 1세대들이 사라지고 유대전쟁의 참상을 보고 들었던 시절에 마르코 복음이 쓰여졌다.

『마르코는 유대전쟁에서 동족 유대인들의 몰살, 해외로 도피한 초대교회 신자들에 대한 염려, 베드로의 박해와 순교소식, 종말이 다가온 것으로 착각한 신자들, 예수를 직접 보고 다라던 1세대 제자들의 거의 사망하는 등 당혹스런 시대를 살았다. 그 혼란스러운 와주에 탄생한 작품이 「마르코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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