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복음서 필자, 집필 장소, 연대 및 범위
마르코 복음서
1. 필자
네 복음서를 집필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작품만 내놓았다. 그들은 작품을 중요시했을 뿐 필명은 대수롭지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가짜 복음서들을 배격하고 참 복음서들을 옹호할 필요성과 복음서들을 서로 구별할 필요성이 생겨 비로소 필자를 거론하게 되었다. 누가 이 복음을 집필했는지 처음으로 밝힌 사람은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빠삐아스였다. 그는 130년경에 사망했는데 평소에 요한 원로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즉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열 번 나오는데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 그리스식 이름이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집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곤 했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를 안티오키아로 데려다가 45-49년경의 1차 전도여행을 함께 했는데 마르코는 도중에 전도를 그만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바오로가 이를 못 마땅히 여긴 나머지 50-52년경의 2차 전도여행 때 다시 채용하지 않자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가서 전도했다.
그러나 53-58년경의 3차 전도여행 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오로 곁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바오로가 순교한 다음 그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쓴 2티모 4/11에서는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다. 끝으로 70-100년 사이에 로마에서 집필된 1베드 5/13에서는 마르코가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다.
빠삐아스가 전하는 말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말들을 근거로 바오로의 협조자요 베드로의 통역자였던 마르코가 이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통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복음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필자는 베드로나 바오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첫째,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바오로의 특유의 낱말, 소재, 사상이 거의 없다. 둘째, 마르코복음서에 수록된 예수의 말씀은 50년대 아니면 60년대 편찬된『예수어록』의 말씀보다
많이 변질되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전한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마르코 복음서에 수록된 치유 이적사화나 구마 이적사화, 논쟁사화나 대담사화 역시 목격자 베드로가 바로 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사실 그 사화들은 그리스 사화 양식을 따라 엮어져 있는데 이는 오랜 전승과정을 거처 가능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편이 상 마르코가 필자였다고 할 뿐이고 사실은 누가 이 복음서를 집필했는지 밝힐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복음서를 눈여겨보면 복음사가의 됨됨이는 더러 알 수 있다. 그가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고 유대인들의 풍습을 안 사실로 미루어 복음사가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어를 집필했을 뿐더러 이방인의 풍습까지 안 사실로 미루어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도량이 넓은 인물인지라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온 인류의 구원을 부르짖었다. 온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음을 믿어 다 함께 기도할 것이라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대인들보다는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시로패니키아 부인과 로마군 백인대장을 신앙인의 본보기로 내세우기도 했다.
2. 독자
마르코 복음사가는 명백히 이방계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복음서를 집필했다. 그러기에 그가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수록한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그리스어로 번역해 놓았다. 또한 이방인들에게는 생소한 유대인들의 관습을 풀이해 주었다. 또한 복음사가는 이방인들의 생활상을 참작하기도 했다. 예로 로마인들의 관습에 따라 밤을 사등분하고 그리스 동전을 로마 동전으로 환산하며 아내에게도 이혼할 권리를 인정한 로마-그리스 법을 거론했다.
복음사가는 또한 시로페니키아 부인과 백인대장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3. 집필 장소, 연대 및 범위
빠삐아스는 집필 장소에 관하여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로마를 꼽은 것 같다. 그의 영향으로 마르코 복음은 로마에서 집필되었다는 통설이 생겼다. 이 설을 반대할 근거도 없지만 근거도 희박하다. 집필 장소는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시리아, 소아시아 또는 그리스를 꼽을 수가 있는데 죄다 부질없는 상상이다. 복음사가가 강조한 보편적 구원론이 이스라엘에서보다는 해외에서 성립될 수 있었다고 본다면 마르코 복음서는 이스라엘 밖에서 집필되었으리라는 막연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집필 연대는 13장 해설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는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초토화되리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장차 닥칠 비극을 예고한 예언이냐 아니면 이미 닥친 비극을 서술하는 보도이냐에 따라 복음서의 집필연대가 달라진다. 사실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66-70년에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다. 이 비극은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독립 염원과 로마제국의 막강한 위력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예상할 수도 있었다.
만일 13/1-2.14-23의 말을 예언으로 본다면 70년 이전에 집필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보도라면 70년 이후에 집필되었을 것이다. 현재 신약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 있다. 그러므로 마르코 복음서는 막연히 70년경에 집필되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 13장을 풀이 하자면 좋건 싫건 한 가지 설을 택해야 한다. 그래 여기서는 70년 이전 집필되었다는 설을 따랐다. 마르코 복음서는 16/8로 끝맺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눈여겨보면 그 끝맺음이 어색하다. 그래서 2세기 독자들이 긴 결문 9-20절을 만들어 덧붙였다.
4. 전승과 양식
마르코 복음사가는 무에서부터 복음서를 창작한 사람이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승을 물려받아 편집한 사람이다. 그가 전해 받은 전승 요소 가운데서 우선 초대교회의 신조를 들어야 한다. 당대 교회의 신조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하나는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신조요 또 하나는 예수의 구원사건을 밝히는 신조이다.
1) 예수의 정체
㉮ 하느님의 아들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과 가까운 이들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예를 들면 천사,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임금, 이상적 임금 메시아, 이스라엘 의인을 그렇게 불렀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압바라고 불렀고 ‘아들’로 자처했으며 ‘나의 아버지’와 ‘여러분의 아버지’를 구별하셨다. 예수께서는 독보적인 의미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아의식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럼 초대교회에서는 어떤 뜻으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신봉했을까? 예루살렘 모교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받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에 수난하신 예수, 그리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섬기기도 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는 하늘에서 선재하시다가 이 세상에 파견되셨다고 믿고 바로 그런 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마르코는 초대교회의 네 가지 神子用法 가운데서 선재, 파견, 용법만 빼고 다른 용법은 물려받은 것 같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존칭이 꼭 일곱 번 나온다. 복음사가의 神子觀은 다음 항목 ‘편집사상’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 그리스도와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의역한 존칭, 이스라엘에서는 임금 즉위식 때나 제관 임관식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임금이나 제관을 메시아라 일컬었다.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 이상적으로 다스리실 임금을 메시아라고 했다. 그는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리라는 통설로 말미암아 ‘다윗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미래의 메시아, 곧 다윗의 아들은 정치적 인물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정치인이 아니셨다. 평소에는 메시아로 자처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 때에는 다윗의 아들로 행차하는 양 군중이 환성을 질렀지만 예수님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최고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시아로 자처했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결국 국사범으로 처형되셨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서슴없이 그분을 메시아 또는 다윗의 아들로 받들었다.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정치적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으므로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런 존칭들을 예수께 드릴 수 있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초대교회로부터 두 가지 존칭을 물려받았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애용했으나 ‘다윗의 아들’만은 다소 경원시한 것 같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그리스도’가 일곱 번 나온다.
㉰ 인자
그밖에도 복음사가가 초대교회로부터 물려받아 애용한 존칭으로 ‘인자’가 있다. 마르코복음서에 열네 번에 걸쳐 나오는 이 존칭의 용법을 분류하면 이승에서 활약하신 인자, 수난하고 부활하신 인자, 재림하실 인자로 대별된다. 인자 존칭의 묵시문학적 유래와 그리스도교 수용과정에 관해서는 2/10 주석에서 설명하겠다.
2) 예수의 구원사건
예수의 구원사건을 열거하는 초창기 信條를 보면 한결같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한다. 이는 핵심적 구원사건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완하여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시고 나타나셨다고 하는 신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죽음과 부활에다 재림을 추가하는 수도 있다.
마르코는 초대교회들의 이런 신조들을 물려받아 복음서를 집필할 때 가장 중요한 대목마다 원용했다. 예로 예수께서는 세 번에 걸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분명히 예고하셨다 고 한다. 또한 실제로 그분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시고 나타나셨다고 하는데 이믐 1코린 15/3-4의 신조를 사화로 엮은 것이다. 특히 천사의 전갈 내용은 코린토서의 신조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그는 예수의 재림 신조의 영향을 받아 인자의 내림도 강조했다.
마르코는 초대교회로부터 예수의 말씀 그리고 예수의 행적에 관한 사화도 물려받았다.
그런데 초대교회에는 거의 한 세대동안 말씀과 사화를 입으로 전했을 뿐 도대체 기록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로 어떤 기회에 예수의 언행을 거론했을까? 비 신도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거나 옹호할 때, 그리고 신도들 가운데서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예배를 집전하고 생활규범을 지시할 때 그 말씀과 사화를 전했을 것이다.
이제 구전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짤막한 말씀이나 사화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종말론적인 가르침처럼 긴 말씀, 수난 사화처럼 긴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어쩌다가 예외적인 형상이다. 그렇다고 마르코가 단편 전승만 수집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전승자들의 구전 과정 중에 단편 전승들을 모아 집성문을 만드는 예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실례는 주석에서 지적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말씀과 사화를 일정한 틀에 맞추어 전했다는 사실이다. 곧 이어서 중요한 양식 몇 가지를 소개할 것이다. 구전 과정은 그렇다
치고 구전을 수집하여 기록한 경우는 어떠했을까? 마르코보다 10-20년 앞서 어느 무명인이 예수의 말씀만 수집하여『예수어록』이란 책을 펴냈다. 아깝게도 이 책은 분실되고 그 내용 일부만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에 전제되어 전해 온다. 마르코는 이 어록을 접하지 못했다. 그는 구전으로 전해 온 단편적인 말씀과 사화, 그 집성문을 수집, 정리해서 70년경에 책을 펴냈으니 이것이 교회사상 첫 복음서다.
3) 예수의 말씀
사화 가운데서도 말씀이 많이 들어 있으나 그것은 사화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상황이 전연 명시되지 않은 말씀만 양식별로 구분하겠다.
㉮ 비유
우선 이야기의 흐림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리고 한 가지 뜻을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뜻만 파악하면 그만이다. 이 복음서에는 다섯 가지 비유가 수록되어 있다.
㉯ 우화
언뜻 보면 비유와 비슷하나 사실은 다르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부자연스럽고 억지가 많다. 그리고 본시 여러 가지 뜻을 전하려고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뜻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를 일컬어 우의적 해설이라 한다. 이 복음서에서 우화는 단 한 건이다.
㉰ 우의적 해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초대교회에서는 우화로 착각한 나머지 우의적인 해설을 했다.
㉱ 단절어
일명 토막 말씀, 전혀 발설 상황을 밝히지 않고 말씀만 전한 경우가 많은데 복음서 곳곳에서 나타난다.
㉲ 유행어
단절어의 일종으로 신도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단절어로 변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 상징어
역시 단절어 일종으로 간결한 비유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에 상징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 묵시록 소품
1차 유대 전쟁 직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짤막한 묵시록이 유행했으며 마르코는 13장을 집필할 때 그것을 이용했으리라는 학설이 있다. 이 설이 옳다면 묵시록 소품은 13장5-31절과 비슷한 내용을 갖추었을 것이다.
4) 예수 사화
㉮ 상황어
단절어와는 달리 발설 상황이 명시된 말씀인데 이를 상황어라 한다. 상황 묘사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맺는다. 마르코는 상황어를 여러 편 모아 수록했다.
㉯ 논쟁
예수의 상대가 적의를 품고 그분의 처신이나 가르침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그분을 한 번도 당해내지 못한다. 논쟁은 열 편 가까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치유 이적사화 테두리 안에서 논쟁이 전개되는 수도 있고 상황어 테두리 아에서 전개되는 수도 있다.
㉰ 대담
언뜻 보면 논쟁과 비슷하다. 그러나 대담의 경우에는 상대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예수를 떠보거나 그분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것이 특징이다. 대담은 네 편 이상 수록되었다.
㉱ 소명사화
예수님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누구누구를 보고 당신의 제자가 되라고 명하시니 즉각 예수를 따랐다는 이야기, 전형적인 소명사화는 세 편 수록되어 있다. 소명사화 이외에도 제자들에 관한 사화가 여러 편 있다.
㉲ 이적사화
무려 18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구마 이적사화 4편, 치유 이적사화 8편, 소생 이적사화 1편, 자연 이적사화 5편, 여러 부류 이적사화에 관해서는 해당 주석을 참조하라.
㉳ 수난사화
일찍이 예루살렘 신도들은 일관된 수난 사화를 엮었으니 이 사화야말로 가장 오래된 것일뿐더러 또한 제일 긴 것이기도 하다. 마르코가 이 복음서를 집필할 때 전해 받은 수난사화는 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맺는지 그 범위를 두고 여러 학설이 있는데 줄 잡아도 체포되신 때부터 빈 무덤을 발견했을 때까지의 이야기에 들어 있다.
5. 편집과 사상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다윗의 아들, 인자라는 신조. 예수는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장차 재림하시리라는 신조, 그리고 그분이 공적으로 활약하시던 때 하신 말씀과 행적에 관한 전승을 채집하여 마르코는 교회사상 처음으로 70년경 복음서를 집필했다. 복음사가는 편집자 또는 편찬가였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작품의 범위와 구조 따위를 구상하고 또한 사상을 정립하여 복음서를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신약계에서는 1950년대부터 이제까지 복음사가의 편집과정과 편집사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계속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편집사적 연구 결과를 대충 소개하겠다.
1) 범위
예수는 이승에서 탄생하기 전에 영원으로부터 저승에 계셨다는 先在 신조가 50년대 집필된 바오로 서간에 분명히 들어 있다. 또한 예수의 수태, 성장에 관한 이야기도 복음서 집필 당시에 약간은 나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는 예수의 선재와 사생활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마태오, 루카, 요한에 여러 편 수록된 예수 발현 사화를 마르코도 더러는 알고 있었을 것인데 어느 하나도 수록하지 않았다. 마르코는 오직 요한 세례자의 출현부터 빈 무덤 발견까지의 예수 활약상을 기록했을 따름이다.
2) 구조
㉮ 갈릴래아 활동기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을실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깨닫는다. 영특한 귀신도 예수의 정체를 눈치를 챈다. 그러나 우둔한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한동안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갈릴래아 활동이 끝날 즈음에야 비로소 베드로가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고 이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스승이 함구령을 내리는 바람에 제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못한다.
㉯ 예루살렘 상경기
예수 일행이 예리고에서 떠나갈 때 바르티메오라는 소경이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아들’이라 외친다.
㉰ 예루살렘 활동기
입성하실 때 군중이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라고 외친다. 그런가 하면 최고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예수 친히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 인자’로 자처하신다. 끝으로 백인대장이 숨을 거두는 예수를 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한다. 요컨대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실 때는 당신의 정체를 숨기시고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으실 때에야 비로소 당신의 신분을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3) 기독론
사람들이 예수를 이해하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예수는 놀라운 인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본 갈릴래아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나 방식이 율사들과는 아주 달랐기 때문이요 또한 그분이 정신적, 육체적 병을 기적으로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 1/22.27;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 4/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6/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 예수는 예언자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과 행적을 보고 그분을 예언자로 여겼다.
• 6/14-15;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 8/27-28;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 예수는 메시아 - 하느님의 아들
갈릴래아 민중은 예수를 예언자로 여겼으나 제자들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이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다. 이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과 예수 변모사화에 잘 드러난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예수께서 함구령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 8/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9/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 예수는 수난하고 부활할 인자
제자들이 당신 신분을 알게 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세 차례 예고하신다. 예고에는 매번 ‘인자’ 존칭이 들어 있다. 이 존칭은 마르코 복음서에 열네번 나오는데 그중 아홉 번은 예수 수난 및 부활과 관련되어 있다.
• 8/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 9/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 10/33-34;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 예수는 수난하는 하느님의 아들 - 메시아, 그리고 재림할 인자
수난 과정 중에 예수의 정체는 환히 드러난다. 우선 예수 친히 최고의회에서 당신의 신분을 밝히고 임종 순간에 또한 백인대장이 예수의 정체에 관한 신앙을 고백한다.
• 14/61-6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 15/39;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평소에 당신 신분을 숨기시다가 수난하고 부활하는 가운데 비로소 드러내셨다는 것이 마르코의 기독론이다. 왜 복음사가는 이런 기록문을 전개했을까? 역사상 예수의 정체와 업적을 올바로 알아듣는 법을 제시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다. 인간적인 예수의 정체와 사건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초대교회 신조에 명시된 기독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는 것이다. 위에서 보았거니와 신조의 내용은 예수의 정체이거나 또는 예수의 구원사건이다. 이런 내용의 신조를 믿으면 인간적인 예수의 인품과 업적을 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고 저 예수의 청중과 제자들처럼 곡해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4) 메시아 비밀과 관련된 소재
㉮ 함구령
예수님은 평소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셨다. 어쩌다 어느 누가 당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때에는 함구령을 내리신다. 귀들에게 내린 함구령, 기적으로 치유된 이들에게 내린 함구령, 제자들에게 내린 함구령.
㉯ 제자교육
예수께서는 제자들만 있는 데서 말씀하거나 행동하신 적이 많다. 제자들에게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사실에 특히 유의할 것이다.
㉰ 제자들의 몰이해
여러 번 제자들을 교육시켰건만 그들조차 예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5) 십자가 추종
예수의 삶은 종국적으로 부활에 이르는 삶이지만 우선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는 삶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수난과 부활에 관해서 첫 번째 예고를 하신 때부터 제자들에게 십자가 추종을 강력히 요구하신다. 마르코가 그처럼 십자가 추종을 강조한 것은 집필 당시 박해를 받던 신도들로 하여금 끝까지 신앙을 간직하도록 격려하려는 것이었다.
• 8/34-35;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10/41-45; “…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6. 의의와 현실성
1) 예수의 공생애에 관심을 갖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믿었다. 이는 구원사건을 내용으로 하는 신조에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죽으신 분은 예수요, 부활하신 분은 그리스도이며 재림하실 분은 인자라고 흔히 일컬었으니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어제의 예수와 오늘의 그리스도와 내일의 인자, 이렇게 삼차원적인 분을 받들었다고 하겠다. 삼차원적인 기독론의 특징은 예수의 생애와 사상에 관심을 갖지 않고 죽음으로 새로운 차원의 삶을 누리게 되셨다는 점에 집착한 것이다.
거의 일방적으로 예수보다는 초월적 그리스도를 이승의 예수보다 저승의 그리스도를, 역사상 예수보다 신앙상 그리스도를 무척 중요시한 셈이다. 바오로 사도는 50-60년 사이에 집필한 여러 서간에서 이 노선을 따라 자신의 신학을 확립했다. 그런데 초월적 그리스도를 중요시한 것까지는 좋지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기독론이 신화와 비슷해질 위험에 매우 크다. 이 위험을 방지한 사람이 바로 마르코이다.
마르코는 신조에다 예수께서 공생애 중에 하신 말씀과 행적을 덧붙여 교회사상 처음으로 복음서를 집필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예수는 신화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살과 피를 가진 구체적인 인물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창기 신도들이 신조에 따라 받들었던 삼차원적 기독론을 마르코는 한편 계승하고 한편 확대시켰다. 곧 신조에서는 ‘어제의 예수’범주 속에 십자가의 예수만 꼽았는데 마르코는 공생애의 예수까지 ‘어제의 예수’ 속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코가 환생한다면 틀림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할 것이다. ‘철저하게 하느님과 인간을 위하시다가 처절하게 돌아가신 어제의 예수를 되새기고 부활하여 은밀히 현존하시는 오늘의 그리스도를 섬기며 환히 내림하실 내일의 인자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마르코의 가없는 공덕은 철저하게 하느님과 인간을 위해서 사신 ‘구체적 예수’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예수를 올바로 알아들어야 한다. 서기 27-30년 사이에 활동하신 예수 님의 인품과 업적이 마르코의 복음서에 곧 바로 드러난다는 뜻이 아니다. 역사상 예수는 직접적으로가 아니고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사실 마르코는 역사상 예수를 뵙지도 못했고 예수의 생애와 사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전한 예수 전승을 모아 주관적으로 복음서를 집필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는 여러 예수관이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우선 복음사가가 편집사상으로 채색한 예수, 다음으로는 유대계, 이방계 교회가 신조로 윤색한 예수가 있고, 역사상의 예수는 그 속에 숨어 있다. 밤까지와 같다고나 할까? 우선 밤송이를 까고 이어서 삽피와 보늬를 벗겨야 비로소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복음서가 객관적 예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두고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사실만을 찾는 사람이라면 허탈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반대로 사실도 사실이지만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면 여러가지 예수관을 담고 있는 복음서를 예수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어쨌든 예수의 직제자들, 유대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복음사가들은 객관적 예수만을 전하거나 기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승을 화석화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의 말씀과 사화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또는 그 전승을 모아 복음서를 집필하면서 끊임없이 예수의 교훈과 처사를 재해석하고 현실화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사라진 현자가 아니라 현존하는 주님이셨던 것이다.
2) 예수의 사생애에 무관심하다
50-60년 사이에 여러 서간을 집필한 사도 바오로, 비슷한 시기에『예수어록』을 엮은 편집자, 그리고 70년경에 역사상 처음으로 복음서를 펴낸 마르코는 예수의 사생애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예수 수태, 탄생, 피신, 소년기 설화는 비교적 늦게 80년대에 편찬된 마태 1-2장과 루카 1-2장에만 수록되어 있다.
이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한 세대 동안 예수의 사생애에는 거의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사사로운 예수를 거론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생활과 나아가서는 마리아의 사생활을 둘러싼 그 처절했던 신학논쟁들을 돌이켜볼 때 서글픈 느낌마저 든다.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도리일진대 예수나 마리아의 사생활도 너무 따지지 말고 모르는 듯 덮어두는 것이 신앙 건강에 유익하리라.
3) 오늘도 오해받는 예수
마르코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의 정체를 도무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여러 번 예수님에게 특수교육을 받은 제자들조차도 죽으시고 부활하시리라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올바로 이해하는가? 예수 도대체 누구신가? 예수는 무엇을 하셨고, 하시며, 하실 것인가? 이런 질문을 신도들에게 했다고 하자.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가물에 콩 나듯 드물 것이다. 훌쩍 신앙 휴가를 떠난 이들이 아니라 꼬박꼬박 수계하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매주 설교를 듣고 때때로 신앙 재교육을 받건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몰이해는 가시지 않는 것만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나 이제나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도 푸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도인들아, 자신을 살펴보라. 그대는 어제의 예수를 되새기고 오늘의 그리스도를 섬기며 내일의 인자를 기다리는가? 오롯하게 압바를 섬기고 이웃을 아끼다 끔찍하게 돌아가신 예수를 섬기고 본받는가를? 임에게 믿음과 바람과 사랑을 쏟으며 나날의 삶을 꾸려 가는가를? 임의 외치신 말씀은 복음이요, 이룩하신 일은 구원일진대 복음따라 기쁘게 구원 따라 홀가분하게 살아가는가를? 임을 찾아 나서자. 찾고 또 찾고 지치도록 찾아보자. 그러나 임과의 만남은 제 힘만으로는 안 되는 일, 따라서 임의 힘을 빌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리라.
구약성서의 결론
구약성서는 인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문서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학적 유산이며, 인류의 정신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일부 부분들이 현대적인 윤리와는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러한 부분들은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성서는 이성과 감성, 지식과 신앙,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하나님, 자연과 인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는 구약성서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문학, 철학, 신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구약성서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또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포괄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 용서, 희생, 자비, 축복, 인내, 희망, 신뢰 등은 인류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구약성서를 통해 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약성서는 다양한 문화와 지역에서 번역되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는 구약성서가 다양한 언어와 문화, 역사와 사회, 지리와 환경 등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적인 지적 유산을 이해하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마르코 복음 이해
마르코 복음사가는 무엇보다 예수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과 몰이해nonunderstanding, 반이해misunderstanding를 바로잡으려는 신학적 목적으로 자신의 복음서를 편집 기술했을 것이다. 복음서 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신에 대해 침묵할 것을 명령하는 예수의 모습 역시 그와 같은 복음사가의 신학적 목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복음사가는 시종일관 구마와 치유 사건으로 예수의 신원이 확장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물론 구마와 치유를 통해 예수의 권능과 권위가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나, 그것이 예수 사건의 최종적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지는 부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또는 드러나야만 한다는 것을 복음사가는 강조하고 있다. 그 신비는 최종적으로 예수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예수를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게 될 예수의 신비를 꿰뚫는 한 문장은 아마도 마르코 복음서 10장 45절일 것이다.
01. 마르코 복음서의 역사적 배경
바빌론 유배부터 바르 코흐바의 혁명까지
제3차 유다-로마 전쟁(바르 코흐바 혁명): 당시 산헤드린을 이끌던 라삐 아키바Akiba는 이 전쟁을 일으킨 바르 코흐바를 메시아로 선언하였다. 그는 '시몬 이스라엘의 왕자'라는 호칭으로 불렸고, 동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고백하던 그리스도인들은 바르 코흐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혁명군은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바르 코흐바의 혁명을 제압한 뒤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입성을 금지하였다.
02. 마르코 복음서의 소재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빈 무덤
마르코 복음서는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쓰였고 분량이 가장 적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출신인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 보도한다.
03.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전기인가?
마르코 복음서는 여러면에서 헬레니즘 문학의 전기와 공통점이 있다.
① 마르코 복음서 1장 1절: 예수의 이름과 호칭으로 시작된다.
②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 중심이 된다.
③ 예수의 죽음에 대해 상세히 전한다. 특히 마지막 십자가형 장면에서 진행 과정을 시간에 따라 보고 한다.
마르코 복음서는 마치 하나의 전기처럼 독자들에게 접근하지만 전기와는 다른, (정확히 말하자면) 전기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전하려는 문학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연구가들은 마르코 복음서를 (전기라기보다는) '복음'이라는 고유한 문학 장르로 간주하고 있다.
04. '마르코'라는 이름에 대하여
'마르코'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르스Mars에게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이자, 농사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마르스는 로마 건립 설화에서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로 로마인들은 자신들을 마르스의 후예로 여겼다. 마르코는 계층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널리 흔하게 사용되던 이름이었다.
로마 제국의 서쪽 지역에서 발견되는 비문에서 마르스는 자주 그곳의 지역신으로 언급된다.
05. 마르코 복음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썼을까?
①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 '마르코에 따르는KATA MAPKON'이라는 표제로 시작되어 저자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만 저자 자신에 대한 역사적 정보는 주지 않는다. (14장 51-52절에 등장하는 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 이야기가 아마도 저자 자신에 대한 서술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② 바오로와 관계를 가졌던 '마르코' - 사도행전에서 '요한' 또는 '마르코'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오늘날의 신약 연구가들은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의 기록을 근거로 그를 마르코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③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 원로 요한 → 파피아스 → 에우세비우스로 전해진 내용은 베드로의 통역이었던 마르코가 스스로 예수를 직접 보거나 따랐던 것은 아니지만 베드로에게 전해 들은 예수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르코 복음서의 문학적 특징
① 그리스어가 고급스럽지 못하다.
② 라틴어식 용어들이 여러 차례 사용되었다. '군대''경비병' '부대' '백인대장' '세금' '데나리온' 등의 용어는 저자가 라틴어식, 즉 로마식 표현에 익숙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③ 자주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해 준다. 저자 자신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할 수 있었던 반면, 독자들은 그렇지 못했던 언어적 환경을 반영한다.
④ 유다의 전통에 대해 설명한다. 유다 전통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일이다.
⑤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 성경인 칠십인역의 전통을 알고 있었다.
⑥ 유다 지역의 지리적 정보에 정통하지 못했다.- 예수의 이동 경로가 비현실적이다.
--▶ 마르코 복음서가 로마에서 현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해 쓰였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로마의 그리스도 공동체에는 유다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혼합되어 있었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의 신학적 측면
신적 권능과 업적에 대한 관심, 유다 전통에 대한 분명한 반대와 로마 제국주의에 대한 암시적 거부가 두드러진다. 마르코 복음서의 청자나 독자는 로마와 일정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로 추측할 수 있다.
작성시기를 결정하는 기준은 유다-로마 전쟁이다. 예수 사건 이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생겨났던 원-공동체Ur-Gemeinde는 유다와 로마 제국 사이의 무력 충돌에 휘말리게 되었다.
마태오, 루카 복음서: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장면을 회고하고 있으므로 70년에 이후에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
마르코 복음서는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차이를 보인다.
06. 신약 성경에서 마르코 복음서는 어떤 위치인가?
신약 성경 27권의 분류
1. 공관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2. 바오로 서간 - 공관 복음서보다 먼저 쓰여졌다.
3. 가톨릭 서간
4. 요한계 문헌
공관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졌다. (루카와 같은) 긴 여행 보고서나 (마태오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 묶음 들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 하나의 사건에 대해 보도할 경우 다른 두 복음서들 보다 더 자세하게 그 내용을 다룬다.
07. 마르코 복음서의 문학적-신학적 특징
마태오: 단단하고 논리적, 루카: 수사적이고 화려, 요한: 추상적이고 심오, 마르코: 대화적이고 회화적,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박력있는 문체
08. 마르코 복음서의 구조
'베드로의 고백(8,29)'를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거나 8장 22절-10장 52절을 중간 부분으로 세 부분으로 나눈다.
중심 기준: 지리적 지형적 관점(갈리래아에서 출발해서 예루살렘에서 마무리된다.)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으로 구분
문학적 신학적 대칭구조
① 프로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다.
예수 부재라는 상황에서
전반부 - 광야, 세례자 요한
후반부 - 무덤, 젊은이
광야, 무덤은 모두 천상과 지상이 연결되는 장소이다.
② 전반부와 후반부 시작 단계 - 하늘로부터 '소리'
③ 전반부와 후반부 한 번씩 예수가 행한 큰 묶음의 가르침 등장
④ 전반부 - 세 번의 몰이해nonunderstanding 내용 등장, 후반부 - 세 번의 반이해misunderstanding 내용 등장
⑤ 전반무 마무리 - 베드로의 고백(8,29),후반부 마무리 - 백인대장의 고백(15,39)
09. 마르코 복음서의 갈등과 긴장
창세기의 세상 창조 이야기 - 혼돈과 질서, 어둠과 빛, 물과 땅의 갈등
인간 창조 이야기 - 하느님과 아담(하느님과 인간 사이), 카인과 아벨(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성조사 - 아브람과 롯, 사라(+이사악)과 하갈(+이스마엘), 야곱과 에사우, 요셉과 형제들의 갈등
탈출기 - 하느님(+모세)와 이스라엘의 갈등
역사서 - 하느님(+예언자들)과 임금들 사이의 갈등
마르코 복음서에 나타난 갈등 구조
① 예수와 유다 전통
마르코 복음서는 제목에서부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메시아'에 상응하며 '메시아'는 문자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뜻한다. 예수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유다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시는 '임금'의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는 '율법'과 '성전'이라는 유다 전통의 두 기둥과 예수를 불편한 관계에 놓음으로써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동력을 얻고 있다. 복음사가는 유다 전통의 이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라는 호칭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지평을 제시한다.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단지 유다 전통이 고대했던 메시아(즉, 임금)가 아니라, 유다를 뛰어넘어 이방 지역의 모든 이들을 향해 열려있는 보편적 구원의 주체임을 고백한다.
② 예수와 로마 제국주의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바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의) 로마 제국과 (천상의) 하느님 나라의 대비가 피해갈 수 없는 갈등의 중심에 있다.
③ 예수와 제자들
네 복음서 중에서 열두 제자들의 부족함을 가장 신랄하게 드러낸다.
전반부- 제자들의 몰이해
후반부- 제자들의 반이해
십자가 사건 - 예수를 배반, 부인, 도망치는 제자들
예수의 가르침과 '함께 있음’을 통해 제자들은 서서히 예수가 누구인지 알아간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점진적으로 야훼를 알아가듯이 제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파스카와 갈대 바다 사건을 통해 야훼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이 신약의 제자들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마르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주된 관심
-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종말론적으로 선포하는 것
- 제자들을 모으고 가르침으로써 교회를 이루는 것
④ 예수의 내적갈등
예수의 자의식
예수의 신성과 관련된 예수 자신의 진술(14,62)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다정다감한 모습은 십자가 사건을 전후하여 이야기 전개의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빈 무덤 진술을 통해 그 모든 갈등과 긴장이 투명하고 명료하게(하지만 행간에서) 해결된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 해결되는 갈등은 예수와 유다전통, 또는 로마 제국주의, 또는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뿐 아니라, 예수의 내적 갈등도 포함한다.
마르코 복음서의 예수론
그리스도론Christology
예수론Jesuology(현대신학) - 교회의 교도권에 의해(또는 유럽의 신학에 의해) 해석되기 이전의 예수에 대해 논의
알버트 놀런Albert Nolan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Jesus before Christianity: the Gospel of Liberation> -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던 유다 청년 예수에 대해, 그리고 그 복음을 통해 생겨난 예수와 세상의 갈등을 다루었다.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에 대한 보도는 '예수론'에 가깝다. 복음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예수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를 메시아사상messianism이라는 유다 전통의 바탕 위에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서는 의도적으로 예수가 메시아에 대한 전통적 기대를 뛰어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또한 복음서의 저자는 매우 절제된 태도로 예수에 대한 정제된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그에 대한 잘못된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바로잡으로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 예수는 '그리스도'이자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중심 주제로 전달하고자 했다. 로마 제국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로마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술하였기 때문에 '신의 아들'이라는 (제국의 황제에게 어울릴 법한) 호칭을 예수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정치권력적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놀랍고도 경이로운 고백으로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상승한다. 이와 같이 새롭고 경이로운 예수의 실재는 결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음을 복음사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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