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서신학의 시작(19C 초)
-. 18세기 계몽주의(구습타파, 이성과 과학)
이성중심의 탈신화화 작업 : 성서속의 수많은 모순과 불일치 따라 원시적 세계관 거부
성서의 초자연적인 사건들 :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진화론 적용(뉴턴, 헤겔, 다윈)
본문의 발전과정과 그 기원에 관심을 갖고 본문에서 시작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원래의 사건이 무엇인지를 재구성하여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더 이상의 영감을 받아 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며, 내제적인 역사 속에서 종교사적으로 진화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서는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에 관한 기록으로 성도도 마찬가지로 고대문서를 판독하고 평가하는 보편적인 기준과 방법에서 결코 제외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서를 인간이성과 보편적인 윤리 기준에 따라 비판하고 간주하여 선택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2. 역사비평 방법론
¶ 성서가 역사를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서저자들이 역사가라기보다는 신학자에 가깝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성서 기자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신학적인 메시지들은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철저히 얽혀 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역사와 분리하기도 매우 어렵다. 말하자면 성서는 역사로서 우리와 대면하고 있으며, 무시하기 어려운 역사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학이 역사적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 성서의 역사성에 대한 극단적인 이해 가운데 우선 성서자료가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유지되기가 어렵다. 1) 성서 기자가 전제하는 역동적이며 신 중심의 자연관 및 역사관에 대해 현대 서구적 사고를 특징짓는 현실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며 긍정적인 접근 방식 사이에는 명백한 애매모호한 관계가 있다는 점, 2) 성서이야기 속에 있는 명백한 모순점들의 일부를 조화시키고 성서의 외적 증거들을 꿰 맞추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 3) 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사비평 그리고 다른 역사비평적 방법들에 따른 성서 자료의 정밀한 분석 결과가 있다는 점들이다. 두 번째의 극단적인 견해는 극단의 회의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로 역시 고대 이스라엘이 존재했으며, 이스라엘이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고 어쨌든 성서가 그 역사이해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기는 힘들다. 실로 사람들이 성서의 역사를 주장하는 바와는 무관하게, 성서의 존재 자체가 고대 이스라엘의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인 증거인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신화이어서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복음서를 통해 역사적인 예수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바오로 : 가장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인 바오로의 저서에서는 역사적인 예수, 복음에서 말하는 예수의 말씀이나 행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직 신앙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공시적인 방법론(문학 비평 방법론)
¶ M. Sternberg : "성서는 문학 작품이다“
언어는 부분들이 전체와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체계이므로 공시적으로 볼 때만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소쉬르는 비교 언어학에 대해서 공시적인 구조 언어학으로 대치시키고 구조분석에 전념한 바가 있다.
¶ 역사비평 방법론의 본문의 저자 문제 등을 연구하는 통시적 방법으로는 특히 신화, 전설, 민담 등 구두로 전해진 본문들의 깊은 의미를 찾는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최종형태의 성서 본문 그대로 전반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공시적인 방법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 본문의 저자와 독자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갖고 보면 의사소통 이론에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즉 저자(발신자) ⇒ 본문(메시지) ⇒ 독자(수신자)
¶ 마르코복음의 나병환자 치유에서
독자가 나병의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무서운 병인 것을 전혀 모른다면 예수께서 그 나병환에게 손을 댄 행위의 특별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독자가 나병의 전염성에 관해 잘 알고 있다면 예수님의 행위가 신체적인 위험을 초월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독자가 유대인의 관습이나 구약성서의 정결법을 알고 있다면 단순히 치유 이야기를 넘어 종교적인 관습이나 차별을 극복하려는 예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법”을 초월하는 예수의 “사랑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루가복음16장 27-31에서 부자와 나자로에서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외부지식 : 율법과 예언서의 다양한 가르침 중 무엇을 의미 하는가
내부지식 1 : 루가10, 25-37(가장 큰 계명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
내부지식 2 : 루가3, 7-17에서 예언자들의 대표인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으로 이웃사랑으로 언급.
-. 틈메우기(filling gaps)
요한14,7-9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그분을 이미 본 것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 삼단논법(sillogismo) :
대전제: 사람은 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생략 삼단논법 : 생략삼단논법에서 청중들이 익히 알수 있는 대전제를 생략한 형태로 나타내는 연역적 수사를 의미한다. 생략삼단논법은 근본적으로 대전제를 청중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설득의 효과를 지닌다.
대전제: 아버지는 나와 하나이다 소전제: 너희는 나를 보았다 결론: 너희는 아버지를 보았다
EX : 요한1, 1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말씀이 하느님이셨다.
요한1,14“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셨다”
요한1.18“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외아들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
-. 반복(repeats)
• Brachylogia(생략이나 추론을 통해 간단하게 말하기)
한번 읽어서 이해하기 힘든 글. 반복해서 읽어야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다. 그래서 반복을 통해 마음에 새기도록...
• 반복현상
-. 현대문학에서 훌륭한 문장이 되려면 중복을 피해야 한다.
-. 히브리 성서는 읽기 보다는 듣기 위해, 쓰기 보다는 암기하기 위해 쓰여졌다.
-. 듣는 청중을 중심으로 한 낭송과 암기에 강조를 둔 것이 고대근동문학 양식과 구조를 결정
-. 반복은 좋은 기억 수단이다
교차대구법(두개의 선을 X자처럼 교차 시킨다) a-b-(x)-b'-a'
EX) 사람은 살기 위해 먹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a-b-(x)-a'-b'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수사학의 일반적인 구조적 장치로, 고대 근동문학이나 그리스도교 성서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법
청중들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쉽고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드는 기억장치이며, 상상적인 결속 수단이며,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
반복현상은 전형적인 근동지역의 문학적 기교였다.
반복문이나 교차대구문은 절정(climax), 초점(focus), 가장 흥미있는(highlight) 사건을 강조한다.
반복문이나 교차대구문은 하느님의 참 메시지가 전달과정에서 여러말들에 의해서 가려지지 않고 직접적으로 제시되게 한다
메시지 전달의 안전장치로서 도식구조: 그래픽은 천마디의 장황한 설명문 보다 낫다. 이러한 그래픽 틀로 짜여진 도식언어는 계시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전달자가 임의로 변형하거나 실수로 일그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수단이다.
• 루가16,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불의한 청지기를 본받아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하여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진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는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평행기법, 반복과 대조
16,11의 “불의한 재물”은 “참된 것”과 대조.
이 “참된 것”은 제자들이 꼭 얻어야 되는 것으로(“누가 너희에게 ... 맡기겠느냐?”) 16,9에 “영원한 거처” 즉 천국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불의한 재물”은 불의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물이 아니라 영원한 거처와 대조되는 “세상적 재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 루가19,1-10 자캐오 이야기
1절 예수의 행동(예리고에 들어가심)
2절 자캐오 소개
3절 사람들의 방해(예수를 볼 수 없음)
4절 자캐오가 돌무화가 나무에 올라감
5절 예수께서 자캐오를 부르심
6절 자캐오가 돌무화가 나무에서 내려옴
7절 사람들의 비난(죄인의 집에 머뭄)
8절 자캐오의 결심/자기 번호
9-10절 예수의 선포
위의 구절의 구조를 살펴보면 교차대칭구조를 통해 가운데 놓인 5절을 강조. “먼저 불러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은총의 선행성. 죄인의 회개와 구원 성취.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닥쳐올 모든 일을 아시고 나시어서 그들에게 “누구를 찾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들이 “ 예수께서“내가 그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예수를 넘겨 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
그런데 예수께서 “내가 그입니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뒤로 물러나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
그러자 다시 그들에게“누구을 찾습니까?”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대답하여“내가 그입니다 라고 당신들에 말하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들이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을 가게 버려두시오”하셨다. 이것은“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4.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과연 누가 우리 복음서를 집필 하였는지 처음으로 밝힌 사람은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였다. 그는 130년경에 사망했는데, 평소에 요한 원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즉,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히 기록했다는 것이다(마르코는 베드로의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기억나는 대로 기록)(에우세비우스, 교회사3,39,15: 참조:3,39,17).
신약성서에는 요한 마르코라는 이름이 열 번 나오는데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이다. 바올로의 협조자요, 베드로의 통역이었던 마르코가 우리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통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필자는 바올로나 베드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① 마르코복음에는 바울로의 특유의 낱말․소재․사상이 거의 없다. ② 마르코복음에 수록된 예수의 말씀은 50년대 아니면 60년대에 편찬된 예수 어록(q)의 말씀보다 많이 변질되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전한 예수말씀을 그대로 기록했다고 볼 수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편의상 마르코가 필자였다고 할 뿐이고 사실은 누가 마르코복음을 집필하였는지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리어와 아랍어 그리고 유다인들의 풍습을 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복음사가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어로 집필했을 뿐아니라 이방인들의 풍습까지 아는 것으로 미루어 해외문물을 익혔으며 복음사가는 도량이 넓은 인물인지라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온 인류의 구원을 부르짖었다. 온세상(14.9) 모든민족이(13.10) 복음을 믿어 다함께 기도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다인들보다는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했다(12.9).
사실 유다인들이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66∼70년에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70년경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다. 이 비극은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족립 염원과 로마제국의 막강한 위력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예상할수 있다. 만일에 13,1-2. 14-23의 말을 예언으로 본다면 복음서는 70년이전에 집필되었고 반대로 본다면 70년이후에 집필되었을 것이다.
13장을 풀이하자면 좋던 싫든 두가지설 중에 하나를 택하지 않을수 없다. 선택을 강요하는지라 여기서는 부득이 70년 이전 집필설을 따랐다.
구약의 인용(2-3절)
1,2a :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낸다 (출애23,20)
1,2b : 그가 너의 길을 딱아 놓으리라.
그가 네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말라3,1b)1,3 :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 중에 마르코가 사망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초대교회에서 대주교구중 하나로 여겨질 만큼 신앙의 도시였으나 이슬람인들에게 점령되어 박해를 받으면서 쇠퇴해 간다. 828년 베네치아의 두 상인이 방문하여 마르코의 성인의 유해을 모신 수도원을 방문하고 베네치아로 공수하기 위해 후한 돈을 주고 안전한 베네치아로 모시기로 한다. 항구를 떠나기 위한 세관검사가 문제였으나 이슬람인들이 혐오스러워 하는 돼지고기로 유해의 상부에 피복하여 가지고 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막상 유해가 이탈리아에 도착하자 총독은 마음이 바뀌어서 총독성에 안치하려고 했으나 유해가 꼼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은 11세기에 건축을 시작했으며 제대에는 "성 마르코의 유골" 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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