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복음서 주해]
1 • 1,1 마르코는 예수의 사생애에 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고 오직 공생애만 서술했다. 마르코가 공적 예수 사건을 기록하면서 왜 요한 세례자의 활약부터 시작했을까? 세례자 전승을 전해 준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 전승을 전해 받아 이 대목을 꾸민 마르코 자신도 세례자를 예수의 선구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례자와 예수를 밀착시켰던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1) 아마도 세례자 자신은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자처했을 것이다. 2) 세례자의 제자들은 세례자가 처형된 다음에 그를 메시아로 추대했다("요한 메시아 → 하느님" 도식). 그들은 요한 교회를 설립하여 예수 교회와 맞섰으니,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고 요한 메시아의 제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3) 예수 교회에서는 한편으로는 세례자를 존경하고 또 한편으로는 격하시켰다. 세례자는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이 아니고 오직 예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렸던 것이다("요한 선구자 →예수 메시아 → 하느님" 도식). 마르코는 이런 세례자관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몇 가지 전승요소를 물려받아 이 대목을 꾸몄다. "하느님의 아들이신"(1절)은 바티칸 사본과 베자 사본, 그리고 시나이 사본 교정문에는 있지만, 시나이 사본 본문에는 없다.
에위앙겔리온(복음)은 “기쁜소식”이라는 뜻이다. 1) 그리스도교계에서는 바울로가 이 낱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그는 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전갈을 일컬어 복음이라 하였다. 2) 그러나 마르코는 복음의 내용을 넓혀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까지도 복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3)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 친히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한다(1,14-1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선포하신 복음이기도 하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복음이기도 하다. 곧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는 주체도 되고 복음의 내용으로 선포되는 객체도 되신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 그리고 그분의 활약과 종국에 관한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한다. 마르코는 세례자를 예수 메시아의 선구자로 보았기 때문에 그를 복음의 효시로 삼았다.
• 1,2-3 마르코는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라고 하나 사실은 출애 23,20; 말라 3,1; 이사 40,3을 인용한다. 출애 23,20; 말라 3,1을 합친 혼합 인용문인데 어록에도 그 변체가 있다(마태 11,10 = 루가 7,27). 1,2의 끝부분은 이사야 40,3을 인용한 것이다. 구약에서는 "심부름꾼”(말라3,1)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이사 40,3)가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인물인데 비하여 우리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공적 활약을 준비하는 인물로 바뀌었다.
• 1,4-5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요한은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며 죄사함을 .... ”이라 한다. 요한의 활동 가운데 세레를 베푼 행위가 돋보였기 때문에 그는“세레자”로 통했다. 세례를 베푼 시기는 27년경이고(루가 3,1), 장소는 광야인데 정확히 말하면 요르단강(1,5.9; 루가3,3) 동부 베다니아였다. 요한 세례의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대로 각자에게 한 번씩 세례를 베푼 것이다. 요한은 본디 하느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상하여 백성을 회개시키려고 세례운동을 전개하였다(마태 3,7-10 = 루가 3,1-9: 마태 3,11-12 = 루가 3,16-17). 그러나 마르코는 그 동기를 고쳐 요한은 예수님이 곧 공적으로 활약하실 것을 예상하여 그렇게 했다고 한다.
"죄사함, 회개, 세례"의 관계는 이렇다. 하느님을 등지는 짓이 “죄”이고, 범죄한 인간이 하느님께로 되돌아서는 방향전환이 "회개”이다. 이처럼 회개한 인간은 "죄사함"을 받아 그분과의 관계가 정상화된다. 그리고 "세례"는 인간이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는 도리를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라 하겠다.
"선포하다"(케릭세인)와 "선포"(케릭마)는 본디 심부름꾼이 심부름 보낸 이의 이름으로 중대한 내용을 공포하는 행위를 뜻한다. ①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사도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외치는 것을 그렇게 불렀다. ② 그러나 마르코는 그리스도교의 선포 내용을 넓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까지 포함시켰다(13,10; 14,9). ③ 한걸음 더 나아가 요한 세례자가 "자기보다 더 강한 분이 자기 뒤에 오실 것을" 선포하였고(1,7), 예수께서도 "하느님의 복음을"선포하셨으며(1,14·38․39), 제자들도 예수님의 선포활동에 가담하였고(3,14; 6,12), 예수께 치유받은 이와 목격자들이 치유사건을 선포하였다고 한다(1,45; 5,20). 복음과 선포는 그 내용이 같은 까닭에 둘을 합쳐서‘복음선포’라 한다(1,14; 13,10; 14,9; 16,15).
• 1,6 요한의 의복은 엘리아 예언자의 의복과 같았다(2열왕1,8: 참조: 즈가13,4). 엘리아는 죽지 않은 채 승천해 있다가 세말에 다시 온다는 설이 있는데(말라 3,23-24), 바로 요한이 하늘에서 내려온 엘리야라는 것이다(마르9,13).
"유대 지방"은 이스라엘을 삼등분할 때 최남단 지방이고 그 중심부에 예루살렘이 자리잡고 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요르단강 동부 베다니아(요한1,28)는 유대 지방과 인접한 곳이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속죄의 날에, 그리고 유대교 계통의 꿈란 수도자들은 계약 갱신의 날에 죄를 고백하였다(꿈란 규칙서1,22-2,1). 그런데 죄를 대충 고백했는지 아니면 낱낱이 고백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 그리고 요한은 빵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아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마태11,18 = 루가7,33).
• 1.7 1세기에 그리스도교와 요한교가 대립하여 서로 자기네 교조가 더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계에서 예수의 우위성을 주장하려고 만든 말인 것 같다. 예수님이 세례자보다 시기적으로는 늦게 출현했으나 품위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는 것이다.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세례자는 예수께 그런 일을 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한다. 비슷한 말이 어록을 베낀 마태 3,11, 그리고 요한 1,27에도 있다.
• 1,8 어록에 의하면 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시리라 예고하였다(마태 3,11 = 루가 3,16). 그러나 실제로 요한은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 뜻인즉 요한의 물 세레를 거부하면 하느님의 불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받으리라는 경고이다. 1세기 그리스도교에서 요한교를 상대로 세례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고 그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주장하기를 요한교 세례에는 성령이 작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네 세례에만 성령이 내린다고 했다(사도19,1-7) 이러한 배경에서 1,8에서“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로 고쳤을 것이다.
• 1,9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정말 시현을 보시고 말씀을 들으셨을까? 그랬다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면서 그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영으로 사신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 확신을 세례사화에 투사했다고 보는 견해가 옳겠다. 즉, 세례사화에는 예수님 자신의 체험보다 교회의 체험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예수님 자신은 아무런 체험도 하시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료가 너무 간략해서 비록 그 체험 내용을 밝힐 도리는 없지만, 그때 예수께서 강한 소명의식을 지니셨기에 세례를 받으신 다음부터 고향과 친척과 직업을 등지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룩하는 일에 헌신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를 막연히 "그 무렵”이라 한다. 루가 3,1에 의하면 요한이 세례운동을 전개한 시기는 티베리오 로마황제가 즉위한 지 십오년째 되던 해였다. 환산하면 서기 27년경이다. 그리고 떠나오신 곳를 일컬어 같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 하는데 사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자라시고 기술자로 일하셨다(6,1-6).
• 1,10 마르코 복음 세례사화에 의하면 예수님 홀로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신다. 먼저 시현의 내용을 살피면, "하늘이 갈라져" 친지가 상통하게 되고, 하느님의 "영이‥‥ 예수께 내려" 그분은 하느님의 힘으로 살게 되신다. 그런데 하느님의 영을 "비둘기처럼" 표상한 이유는 아무래도 하늘에서 움직이는 동물은 새이고 새 가운데 영물은 비둘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 1,11 하느님의 영이 내린 예수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 옛날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정시대에는 하느님이 새로 즉위한 임금을 양자로 삼아 "너는 내 아들이다"(시편 2,7)라고 하셨는데 이제 예수님은 한결 더 깊은 뜻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 하신다. 여기 "사랑하는 아들"은 요한계 문헌에 나오는 "외아들"과 같은 뜻이다(요한1,14 ․18; 3,16 ․18; 1요한4,9). 히브리어 "야히드"는 "사랑하는", "유일무이한" 두 가지 뜻을 지닌 낱말이다. 아울러 예수님 자신도 그리고 초대교회도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를 유일무이한 부자관계로 보았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수난하실 때까지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숨기셨다고 한다.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이사 42,1 인용문)는 단순히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일정한 사명을 부여하려고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사 42,1은 "야훼의 종"이라는 신비스런 인물이 자신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하려고 고난을 겪는다는 내용의 시가이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저 야훼의 종처럼 살아가도록 선택되셨다는 뜻이다.
• 1,12 예수께서 공적으로 활약하기전에 실제로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까? 유혹사화는 일단 제외하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할 사료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유혹사화는 사실보도가 아니고 사상적 서술이라고 보는 견해가 옳겠다. 무릇 위인들이 크나큰 시련을 극복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세상에 나서기에 앞서 사탄의 끈질긴 유혹을 물리치셨으리라는 생각에서 유혹사화를 꾸몄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사실무근한 사화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공적생활도중에 사탄을 물리치고(마태12,28&루가11,20) 유혹을 뿌리치셨다(마르8,11, 마태12,38-39, 루가11,16.29, 요한2,18)
• 1,13 “사십”은 상징적 숫자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사막에서 지냈고(신명8,2), 모세는 40일 동안 시나이 산에서 단식했으며(출애34,28), 엘리아는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고 40일을 걸어서 호렙 산으로 갔다(1열왕19,1-8)
유다인들은 악령들의 두목을 사탄(3,23.26; 4,15; 8,33), 베엘제불(마태12,24=루가11,15; 마르3,22) 또는 벨리아르(2고린6,15)라 한다. 사탄은 그리스어로 디아볼로스, 우리말로“마귀”혹은“악마”로 번역한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세상의 지배자라 한다(요한12,31; 14,30; 16,11). 사탄은 그리이스어로 디아볼로스, 우리말로 마귀 혹은 악마라 번역한다.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계속하여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는데 그 유혹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어록의 유혹사화(마태 4,1-11 = 루가 4,1-13)에서는 일단 사십일이 지나고서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다 한다. 이상적인 메시아 시대가 오면 사나운 들짐승들이 유순하게 되어 사람들과 함께 평화로이 지내리라는 기대가 있었다(이사 11,6-8; 65, 25). 그 때가 다 되어 예수 메시아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신다. 어록의 유효사화에는 이런 말이 없다. 천사들이 40일 동안 계속하여 시중을 들었다 한다. 시중은 주로 음식을 드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록의 유혹사화에서는 예수님이 40일동안 내내 단식하셨다 한다.
• 1,14 갈릴레아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요한을 체포하여 사해 동쪽에 있는 마캐루스 요새에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했다(6,17-19; 9,13; 요세푸스 ⌜유다고사⌟18,116-119). 일단 요한이 사라진 다음에 예수님은 비로소 공적으로 활약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청중이 그분을 요한이 소생만 것인 줄로 착각할 수 있었다(6,14; 8,28). 요한이 주로 유대 지방 요르단 강변에서 세례운동을 전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주로 갈릴래아 지방 겐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활약하셨다. "복음"이란 낱말과 더불어 "하느님의 복음”이란 표현도 초대교회에서 바울로가 맨 먼저 사용한 것 같다(1데살2, 2․8․9; 2고린11,7: 로마1,1; 15,16). 바울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데 이 두 가지 사건에 하느님이 깊숙이 개입하셨기 때문에 바울로는 "하느님의 복음"이라 하였다. 이제 마르코는 바울로에게서 비롯한 표현을 빌리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바꾸었다. 곧 “하느인의 복음"(1,14)은 "하느님 나라"(1,15)에 관한 예수님의 전갈을 가리키다.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등장하신다(이사 52,7; 61,1).
• 1,15 예수님의 가르침을 집약해 놓았다. 유대교, 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하느님이 역사의 흐름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한다. “때가 차서"는 역사가 완성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갈라4,4; 에페1,10). "하느님의 나라"는 직역하면 "하느님의 왕정"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임금으로서 자연계, 인류역사, 특히 이스라엘 역사를 다스리신다. 그러나 이는 은밀하고 잠정적인 통치이다. 그러다가 역사가 완결될 때가 되면 하느님이 공공연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의 왕도를 펴실 줄로 유대교, 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고대하였다.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말 통치라 한다. 이제 하느님께서 환히 그리고 힘차게 당신의 왕도를 펴실 때가 "다가왔다"고 하는데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① 하느님의 종말 통치가 아직은 아니지만 가까운 장래에 곧 실현될 것이다. ② 그 통치는 예수님의 인품과 업적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종말론적 통치의 미래성과 현재성인데 예수님은 그 통치의 두 가지 성격을 다 강조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당신 인품과 업적을 통하여 은연중에 종말론적 통치를 이미 실현하시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완벽하게 실현하실 것으로 기대하셨다. 예수께서 강조하신 하느님 나라의 특징 두 가지만 더 지적한다. ③ 묵시문학계나 요한 세례자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구원론적 성격을 강조하셨다. 하느님은 인간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구원을 더욱더 열망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소외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셨다. ④ 하느님의 나라는 결국 하느님 자신이다. "하느님의 나라" 직역하여 "하느님의 왕정"은 임금님으로서 환히 그리고 힘차게 선정을 베푸시는 하느님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느님이 다가오셨다"는 것이요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로 간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인간이 취할 태도는 "회개"와 "믿음"이다. 회개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라면 여기 믿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수락하는 것이다.
• 1,16-19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대로(1,15) 사는 사람들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아울러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때와 수난하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당신 제자들과 함께 지내신다고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활동 초창기에 소명사화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복음서 집필 이전의 전승자인 엘리야가 엘리사를 제자로 삼은 이야기(1열왕19,19-21)를 본떠서 1,16-20; 2,14의 소명사화를 역었다. 그 내용에 있어 심리적 갈등 혹은 인간적 소동 따위를 죄다 없애고 오직 순명과 추종을 간결하게 명시하여 이상적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에는 “호수” 대신 “바다”로 표현. 마르코와 마태오는 언제나 “갈릴래아 바다”라 하고 루가는 항상 “갈릴래아 호수”라 한다. 원문에는 “제베대오의 사람 야고보”라 했는데 10,35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제베대오의 아들이다.
• 1,20 당시 유다교 율사와 제자가 함께 길을 가게 되면 제자는 율사보다 몇 발짝 뒤를 따라갔다. 그러니 소명 말씀은 시몬과 안드레아를 보고 당신의 제자가 되라는 명령이다. 보통의 경우 제자가 될 사람이 이름있는 율사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는게 관례인데 여기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고르신다.
• 1,21 율사의 제자들은 율법을 배우는 데 비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인품과 언행을 익히고 나아가서는 그분의 명에 따라 전도활동에 참여한다.
가파르나움은 요르단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서 서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포구. 거기에는 로마군 소부대가 주둔해 있었다(마태 8,5-13 = 루가 7,1-10).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가파르나움에 관해 세 번 언급하나(1,21: 2,1; 9,33), 어록의 불행선언을 보면(마태 11,23 = 루가 10,15) 예수님은 그곳을 활동 근거지로 삼으셨다. 거기에는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 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셨다(1,29). 마르코는 이런 사실을 상기하여 "그들은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갔다"고 했을 것이다.
• 1,22 1,21-34를 일컬어 “카파르나움에서 하루”라 하는데 예수님이 실제로 그렇게 하루를 보내셨다고 볼 것이 아니라, 마르코가 몇가지 단편 사료를 모아서 꾸민 일지로 봐야 한다.
곧, 사실보고가 아니고 의도적 서술이라 하겠는데 그 줄거리는 이렇다. 앞서 선정한 네 제자를 데리고 가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안식일 낮에는 회당과 가정에서, 저녁에는 문 앞에서(1,33) 사람들을 가르치시거나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이튿날 새벽에는 외따른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고(1,35) 이어서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아내셨다(1,39). 그런데 그분의 가르침이 너무나 새롭고 그 치유행위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청중과 목격자들은 놀란 나머지 "이게 웬일이냐?"고 큰 반응을 나타낸다. 아울러 그분의 명성이 가파르나움 읍내와 갈릴래아 지방에 널리 퍼지니 무수한 사람이 예수께 모여 온다(1,28·33). 또한 그분은 당신 신분을 숨기고자 하셨기 때문에 귀신들의 입을 틀어막으신다(첫번째 함구령 1,34). 그러니까 “카파르나움에서 하루”에는 마르코의 예수관이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마르코는 우선 예수님의 일과를 서술하여 장차 그분이 어떻게 활약하실 것인지 미리 알려준다. 그러므로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는 예수가 활약 전체의 본보기인 셈이다.
• 1,23 마르코는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21-34절)를 엮으면서 먼저 당시 신도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구마사화를 채집․수록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용어, 문체, 사상에 따라 더러 개작을 했는데 21-22, 27-28에 편집요소가 뚜렷이 드러난다.
본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셨다(1,21재구성). 그런데 그들의 회당에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 하나가 있었다‥‥ (1,23재구성)." 유대인들은 안식일(= 토요일)마다 회당에 가서 신앙고백·기도․모세 오경과 예언서 봉독·설교 순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다. 예수님도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셨다(3,1-2; 6,2).
• 1,24 그리이스 구마사화를 보면 귀신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구마자의 신분을 폭로하는 방어사가 있다. 우리 구마사화의 이야기꾼은 그 영향을 받아 방어사를 만들었는데, 사렙다의 과부가 엘리야를 상대로 항변한 말을 참고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당신은 내 죄를 일깨워 주고 아들을 죽게 하러 오셨읍니까?"(1열왕 17,18). 방어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러운 영 (귀신)은 자신을 일컬어 "우리"라 하는데 귀신은 그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귀신들의 두목이 사탄(마귀, 악마)이다. 여기서 귀신은 이렇게 항변한다. 예수는 거룩한 신계에, 자기네는 더러운 사탄계에 속하여 엄연히 소속이 다른데 무슨 상관이냐, 왜 자기네를 거세하려 하느냐, 당신 신분을 나는 파악하고 있다 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일컬어 "하느님의 사람"(1열왕 17,18) 흑은 "하느님의 아들"(3,11; 5,7) 이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매우 드문 존칭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 요한 6,69)이라 한다. 그 까닭은 이렇다. "나자렛 사람"(24절)은 고행을 하기로 서원한 "나지르"(판관 13,7; 16,17)와 그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나지르"를 의역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 하였다. 그래서 구마사화를 전한 이야기꾼은 "나자렛 사람"을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풀이했던 것이다.
• 1,22-26 마르코는 예수님이 가르치셨다고 할 뿐 그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의 문맥(1,15)을 살피면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다. 사실 예수님은 신국을 설교의 주제로 삼으셨다. 1,22에서는 청중의 반응을 기록하여 "그분은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그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 한다. 사실 율사들은 언제나 구약성서와 조상들의 전통을 근거로 내세워 율법을 가르친 데 반하여, 예수님은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신국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 내용과 양상이 매우 새롭고 힘찼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는 예수님이 권위있게 가르치신 까닭을 달리 설명하여,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구마행동으로 뒷받침하셨기 때문이라 한다(1,27). 율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기원전 450년경 예루살렘에서 활약한 에즈라를 율사의 시조로 꼽는다.(LXX 에즈8,3) 예수시대의 율사들은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했다. 그들은 12,28-34를 제외하면 언제나 예수님의 적수로 등장한다. 예수시대의 바리사이파 율사들 가운데 힐렐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양대산맥을 이루어 맞섰으며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부터는 힐렐학파가 우세하게 되었다. 율사들은 주로 규범(히브리어로 할라카)과 사화(하가다)를 익히고 전하기를 업으로 삼았다. 즉 율법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는 결의론決疑論을 전개하고 송사를 판결했다(할라카).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전설을 학당이나 회당에서 가르쳤다(하가다).
• 1,27 구마사화와 치유 이적사화는 으례 목격자들의 반응으로 끝맺는 법인데 흔히 여기서처럼 경탄사를 발한다. 다만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 !" 만은 마르코가 덧붙인 것 같다. 그는 구마행위를 가르침으로 평가하였다. 즉, 구마행위는 하느님의 왕정(1,15)이 마력을 물리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드러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뿐 아니라 구마행위로써 하느님 왕정의 위력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 처사를 일컬어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 이라 한다. 이제 구마사화와 구마현상에 대해서 종합적 평가를 내릴 차례다. 우선 구마사화의 서술양식을 살펴보자. 당시 그리이스 사람들은 구마 이야기를 할 때, 구마자와 부마자의 상봉, 부마자의 방어사, 구마자의 추방령, 귀신 추방,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었다. 우리 구마사화 역시 같은 서술양식을 따랐다.
예수께서 실제로 귀신들을 추방하셨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구마사화 하나하나가 죄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고 증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예수께서 구마행위를 하신 것만은 틀림없다. 논거로 ① 사료별로 보아 어록, 마르코, 마태오 특수사료, 루가 특수사료 등 모든 사료에서 구마에 대한 말이 나온다. ② 전승별로 보면 그리스 구마사화 서술양식의 영향을 받은“구마사화”전승이 있는가 하면 그 보다 훨씬 오래되고 역사적 신빙성도 더한 “단절어”전승도 있다. 예로 어록에 수록된 단절어를 들수 있는데(마태12,28=루가11,20), 루가에 따라 인용해 보자.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좇아내고 있으니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③ 유다교 문헌에서도 예수님의 구마행적을 시인한다. 예로 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 43a항에는 “예수가 마술을 부려 유혹하고 이스라엘을 오도했기 때문에 ”처형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시대에 사람들은 귀신을 무수히 보았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불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구마사화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정신병자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마행적은 정신력으로 환자를 고치는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할 수가 있다.
• 1,29 마르코가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를 엮으면서 앞의 문맥을 참고하여(16-20= 첫 제자 네 명, 21= 가파르나움 회당) 많이 개작한 것 같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치유 이적사화는 본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 시몬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시몬 베드로는 베싸이다 출신이다(요한1,44). 그러나 여기 보면 결혼하여 카파르나움에 살고 있다. 그런데“시몬의 집”은 시몬 자신의 집일수도 있고 처갓집일수도 있다. 여하튼 예수님은 가파르나움을 근거지로 하여 활약하시는 동안 “시몬의 집”에 거처를 정하셨다고 여겨진다.
• 1,30-31 원문에서는 “열이 부인을 버리고 떠나갔다”한다. 열을 일종의 귀신으로 본 것이다(//루가4,38-39참조). 당대 사람들은 귀신이 붙어 병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몬 장모가 시중들었다고 함은 음식접대를 했다는 뜻이다(13절 참조).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신 치유 이적사화(1,29-31)는 당대 그리이스인들의 치유 이적사화와 그 서술양식이 같다. 그리이스인들은 치유 이적을 이야기할 때 상황 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었다. 29-31에는 이 요소들 가운데서 단지 목격자들의 반응만 빠져있다. 초대교회에서는 당대의 서술양식을 빌어 예수 구마이적(1,27)과 치유이적을 이야기했다. 따라서 서술양식에 불필요한 소재는 되도록 삭제하고 필요한 요소만 골라서 구마 및 치유 이적사화를 꾸몄던것이다. 그럼 어느 때 이적사화를 즐겨 입에 담았을까? 짐작컨대 대외적으로 전도할 때, 대내적으로 설교할 때나 교리를 가르칠 때 이적사화를 애용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실제로 정신병자를 고쳐주신 것처럼(구마이적) 육체적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도 고쳐주었다(치유이적). 구마이적이나 치유이적은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하겠다. 구마 및 치유이적의 뜻인즉,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미 시작되었다(1,15주석 참조)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사람을 행방시키는 것이 안식일법이나 정결법보다 중요하다. 귀신 따위를 겁낼 것 없다는 가르침이다.
• 1,32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한 집약문이다. 마르코는 구마 이적사화(1,21-28)와 치유 이적사화(1,29-31)를 소개한 다음 이 집약문을 만들어 덧붙였다. 원문에는 "데려왔다" 대신 "운반했다"고 한다. "저녁때가 되어 해가졌을 때" 안식일이 끝나 비로소 다시 일할 수 있다. 환자운반도 안식일에는 금지된 일이다.
• 1,33 시몬의 집 문앞일 것이다.
• 1,35-39 예수께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룻동안 바쁜 일과를 마치시고(1,21-34) 이제 새벽녘에는 홀로 기도하신 다음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구원을 이룩하셨다 한다(1,35-39). 1,35-39은 마르코가 물려받은 전승요소가 아니고 그가 앞뒤 문맥을 참작하여 만든 편집요소라 생각된다. 그는 이 단원을 만들어 삽입하여 가파르나움 포구에서의 활약상과 갈릴래아 지방에서의 활약상을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마르코복음에 두 번 더 나오는데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고(6.46)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셨다(14,32-42).
• 1,40 마르코 복음서에 단 한 번 나오는 나병 치유 이적사화이다. 그 서술양식은 그리이스인들이 치유 이적을 이야기할 때의 양식과 같다. 즉, 상황 묘사(1,40), 기적적 치유(1,41-42), 치유 실증(1,44), 치유된 사람의 반응(1,45) 순으로 엮어져 있다. 함구령(1,43-44)은 이 서술양식에 불필요할 뿐더러 마르코의 메시아 비밀사상과 잘 어울리므로 복음사가 자신이 형성·삽입한 것 같다. 나병 치유 이적사화에는 시간, 장소, 환자의 이름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목격자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따라서 이 사화는 예수님의 일정한 치유 행적을 전하기보다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위대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꾸민 이야기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 1,40 성서에서는 문둥병뿐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고 한다. 나병은 불결할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병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게 했다. 그래서 환자들이 다가오면 “불결”“불결”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다른 곳에서 따로 살아야 했다.
• 1,41 대부분의 사본에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로 되어 있으나 베자사본에서 “화를 내시며”라 한다. 이해하기 쉬운 사본보다 어려운 사본을 택하여야 한다는 본문 비판 원칙에 따라 후자를 선택하여야하나 본문에는 전자가 택해졌다. 화를 내신것은 나병을 유발한 귀신을 향하여 기적의 힘을 드러내신 것이다(참조 7,34; 요한11,33.38)
• 1,44 나병환자가 다시 정상 생활을 하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관에게 치유 사실을 인정받은 다음 제사를 바쳐야 했다(레위14,2-32). 그렇게 함으로서 예수께서 나병을 고쳐주신 사실을 유다인들에게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1,44은 치유이적사화에 들어있는 “치유 실증”에 해당된다.
• 1,45 여기 이적사화는 본디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그 일을 선전했다" 라고 끝맺었을 것이다. 이 끝맺음은 이적사화에 흔히 나오는 "목격자들의 반응"에 해당된다.
나머지는 마르코가 덧붙인 것 같으며, 조용히 숨어 계시고자 하나 결국은 널리 알려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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