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는 유대인과 기독교 신자 모두에게 중요한 성서입니다. 이 성서는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며, 약 39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구약성서의 내용과 역사, 중요성, 그리고 구약성서에 대한 일부 논쟁적인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서의 역사
구약성서는 수세기 동안 여러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이 성서의 저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 저자들은 각각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작품은 나중에 구약성서로 편집되었습니다. 구약성서의 편집과 번역 역시 중요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서를 히브리어로 썼으며, 이 문서들은 말로 전해지는 구전문화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많은 외부 요인들로 인해, 구약성서의 번역과 편집은 여러 번 변경되었습니다.
가장 초기의 구약성서 번역은 그리스어로 된 세프투아겐트였습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용되던 히브리어와 아람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이후에는 라틴어로 된 벌르트 번역과 라틴어로 된 비블리아 헬라이카가 등장하였으며, 중세시대에는 교황국에서 발행한 라틴어성경인 독일어 번역인 루터성경이 대중화되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중요성
구약성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중요한 성서입니다. 이 성서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규범과 유대인들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또한 세계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으며, 시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집 중 하나입니다. 또한, 구약성서의 일부 예언들은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 등은 구약성서에서 예언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들은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 신앙이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와 형식으로의 번역과 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성경(舊約聖經, 히브리어: הברית הישנה, 라틴어: Vetus Testamentum, 영어: Old Testament) 또는 구약성서(舊約聖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경전으로 '히브리성경'(Hebrew Bible)을 기독교 경전의 관점에서 가리키는 말이다. 명칭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현재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의 중립적 용어로 히브리성경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예언한 내용이라고 믿는 경전이다.
구약성경은 전통적으로 네 부분으로 구분한다. 그중 첫째 부분은 모세오경이다. 히브리성경에서는 토라라고 하며, 모세가 직접 받은 계시로 작성했다고 전해진다. 둘째 부분은 역사서이다. 역사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벌하는 것에서 바빌론 유수 사이의 기간을 다룬다. 셋째 부분은 지혜문학이다. 지혜문학은 시의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선함과 악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담는다. 넷째 부분은 예언서이다. 예언서는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받을 결과에 대해 예언한다.
문헌사
구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현재 기원전 120년대의 사해사본이다. 사해사본 발견 이전 오랫동안 기원후 900년경의 마소라 본문이 알려졌으나, 이 사본의 본문 정확도는 연구자들이 신뢰하지 않았다. 1세기경의 사본을 발견하면서 마소라 사본과 비교한 후에 사본 정확도가 밝혀졌다.
사해사본 발견 이전까지 구약성경을 최종 편집한 기원전 400년경과 기원후 900년과는 무려 1,300년이라는 긴 시간적 차이가 나므로 본문 오류와 조작 가능성으로 사본의 정확도는 신뢰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이 완성된 이후 1,400년이나 지난 기원후 1008년의 바빌로니쿠스 서판(Codex Babylonicus Petropalitanus)뿐이어서, 그때까지 성경학자들은 바벨로니아의 점토판이나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유일한 자료로 활용했었다.
그러나 1954년 베두인 목동이 우연히 기원전 125년경쯤에 작성한 사해 사본을 발견하여서 원본과 차이를 275년으로 좁혀 놓았다. 40,000여 개의 사본 조각들을 편집해서 500여 권의 책을 재구성하였다. 이중 1/3이 구약성경이었고, 에스더서 일부를 제외한 구약성경 전체가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사해 사본과 1,0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마소라 본문과 비교하면, 이 둘 내용은 서로 일치한다.
명칭
5세기에 신약성경이 결정되면서 경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짓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었다. ‘구약’이란 말은 ‘옛 계약’이란 의미의 한자어이며, 기독교의 관점에서, 신약성경과 대비되는 신과의 ‘옛 계약’이 적힌 책이라는 의미로 쓰이므로, 유대인에게는 용인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을 히브리 성경이라고도 한다.
구약성경은 율법서, 예언서 및 성문서 등으로 분류되며, 기독교 종파에 따라 분류 체계에 차이가 있다. 특히 정경으로 인정되는 39권 이외에 일부 낱권은 외경으로 분류하며 제2경전이라고도 한다. 이 외경 수용과 범위에 대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차이가 있으며, 서방교회 내에서도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도 있다.
유대교
"구약성경"은 기독교의 명칭이고, 유대교에서는 "타나크"라고 한다. 중립적인 용어로 '히브리 성경'으로 불린다. 기원전 1500년~400년 사이에 유대 민족의 구전 전승이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지만, 현대 성서학계에서는 실제 문헌 작성 연대를 훨씬 나중으로 이해한다. 토라(모세오경)의 경우에는 주로 유대왕국 후반부터 바빌론 유수기에, 케투빔(성문서)와 느비임(예언서, 선지서)의 경우에는 바빌론 유수기부터 예루살렘 귀환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의 히브리성경 내 24권의 모든 문서가 유대교의 경전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기원후 70년 유대전쟁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종교의 대부분의 유파가 사라지고 남은 유일한 유파인 바리새파가 유대교를 재형성하던 시기인 기원후 90년경의 얌니아 회의에서 결정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반론으로 얌니아 회의는 바리새파의 유대교 형성을 위한 회의였으며, 특정한 문헌의 히브리성경 목록 추가 및 배제가 논의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구약성경 목록 확정의 공식적인 증거 자료들은 2세기 이후에 비로소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성 연대가 1세기 말로 추정되는 요세푸스의 아피온 반박에서 22권의 정경이 언급된다고 하지만 세부 목록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며, 역시 1세기 말 작성으로 추정되는 에스드라 2서에서는 24권(기독교에서는 39권)의 현 히브리성경와 같은 책 숫자가 언급되지만 역시 문헌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2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바 바트라'에서 히브리성경 24권의 목록이 전체적으로 처음 언급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사르디스(사데)의 주교인 '멜리토'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한 후 소개한 '그들의 성경' 22권과의 목록과의 상이성을 보면(에스더는 배제되고 지혜서가 포함된), 2세기경 결정되었다고 주장되는 히브리성경 목록이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멜리토 이전의 초대교회가 당시 유대교의 정경 결정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각 문헌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증언에 주로 의존해 왔지만(벤 시락의 집회서나 에스라 등의 증언), 성서학계의 연구는 여러 갈래의 전승들이 본문 비평을 통해 다양한 기록자에 의해서 기록, 채색되었고, 지역 및 시대에 따라서 다른 갈래의 문서들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히브리어 전통을 보존했던 팔레스타인의 바리사이파 랍비들은 그렇지 못했던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에 비해 신학적인 우월성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세력이 지지하는 문서와 그 목록이 경전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얌니아 회의 이후 이들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문서들이 유대교 안에서 경전성을 배제당하는데, 히브리 사상의 충실한 반영과 신뢰성 있는 히브리어 원문의 존재 유무가 가장 핵심적인 경전성 결정의 기준이었다. 이전까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새롭게 발전하는 기독교 세력이 사용하던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을 얌니아 회의 이후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사용을 중지하였다.
얌니아 회의에서 인정된 히브리어 성경인 히브리성경의 내용적 차이의 문제와, 히브리어 원문이 없이 그리스어 번역본만 존재하는 문헌들도 있어 그 출처의 신뢰성을 의심받았고, 결국 유대교 안에서 축출당하였다. 70인역을 대신하여 유대교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히브리성경을 대본으로 하여 아퀼라역을 새롭게 번역하였다.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히브리성경을 '구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382년에 로마 공의회에서 새롭게 정한 경전들을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부르기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역사에 등장하였고, 따라서 '신약성경'으로 분류된 문헌 안에서 언급된 "성경"이라는 모든 표현은 곧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에는 그리스어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세력과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따라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70인역이 그대로 기독교의 경전이 되면서 외경 논란의 화근이 되었다.
내부적으로 높은 권위를 인정되던 주요 문헌들이 70인역을 주로 인용하였기에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구약 목록
문헌상으로 증명되는 최초의 정리된 기독교 구약 목록은 2세기 후엽의 인물인 사르디스(사데)의 감독인 멜리토의 편지로서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수록된 것이다. 좁은 성경 목록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구약성경 목록에 가깝지만, 에스더가 빠져있고 2경전에 해당하는 솔로몬의 지혜서가 들어가 있다는 차이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유대교 히브리성경이 초대 기독교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거나, 히브리성경 자체가 그 당시에 유대교 안에서조차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후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나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서신 등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기독교의 좁은 성경 목록의 경향성은 계속 드러난다. 대개 동방교회는 이러한 '좁은 성경 목록'의 입장을 보인 교부들이 많은 편이었다.
문헌상으로는 멜리토의 것처럼 정리된 목록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나, 다수의 초대교회 교부들은 일부 구약의 외경들도 성경으로서 인용하는 이른바 '넓은 성경 목록'의 입장에 선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입장들은 교회 내적으로 정리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교회의 등장은 구약 정경 이해에 기준을 형성하였다.
보편 교회의 구약정경과 외경
특히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게 공인된 이후, 교리와 제도, 신학이론은 보편교회의 기틀을 형성하였다. 급격히 교세가 확장되면서 로마 제국이 로마 지역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는 상황에서 신약성경을 포함한 경전 확립의 필요성이 요청된 4세기 후엽에는 절실한 상황이 되었다. 당시에 경전의 확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며, 아타나시우스나 히에로니무스 등의 일부 저명한 신학자들은 구약 부분에서 90년 유대교의 얌니아 회의 결과에 따르는 히브리어 경전 본문과 그 목록의 우월성을 주장하였는데, 특히 기원전 2세기 전후에 작성된 문헌들을 헬라문화를 수용한 이후의 문헌으로 보고 이 문헌들을 '외경'(아포크리파)으로 분류하여 정경에서 구분하였다.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교회 지역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라틴어 권역의 호교론자들은 외경을 중요한 구약 전통으로 여겼다. 397년 북아프리카의 서부 도시였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유대교에게는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어 번역본의 경전성을 인정하며, 보편교회에서 독서 가능하나 교리에 적용하지 않는 기준으로 외경을 '구약성경' 일부로 포함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서방교회 지역인 라틴어권 교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저명한 교부들 상당수가 제2경전 문헌에 대한 정경성에 의구심을 보이고 비판하였으며, 특히 공교회 지역인 카르타고 공의회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로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부 개신교계 성서학자들은 히에로니무스가 경전적인 문헌과 교회의 문헌을 나누어 불가타 성서에 실었는데, 필사자가 구분없이 필사를 하는 바람에 제2경전도 정경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출처 필요]
교회 대분열 이후 서방교회 구약
11세기 공교회에서 로마교회가 분리되면 헬라어 지역인 동방교회와 라틴어 지역인 서방교회로 나뉘는 교회 대분열이 발생했다. 대분열 이후에도 동방교회 지역은 추가적 공의회 없이 헬라어를 사용한 보편공의회의 교리와 신학 결정들을 수정 없이 따랐다.
그러나 서방교회 지역은 라테란 공의회를 시작으로 새로운 로마 교황제와 새로운 서방교회 제도, 신학적 재구성을 위해 라틴어로 진행하는 서방교회만의 공의회들을 열었다. 추가적인 신학이론과 교리 형성을 위해 외경을 이용하고 근거로 사용하였고, 서방교회는 공교회에서 결정한 사안인 외경은 독서 가능하나 교리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기준을 변경하였다.
서방교회 종교개혁 이후 구약
서방교회에서 외경에 대한 갈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6세기의 서방교회의 개혁에 대한 '개혁 찬성파'와 '개혁 반대파'의 대립인 종교 개혁 시기였다. 특히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였던 마르틴 루터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각 문헌들 사이에 권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Kanon im Kanon), 이 중 구약정경 구성에 대해서는 공교회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하였다. 칼뱅의 경우에도 12세기에 형성된 서방교회의 구약정경 이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루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교황 지지파였던 개혁반대파는 1545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정경에 대한 도전적인 주장들을 모두 일축하였고, 제2경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과거에 '외경'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일부 문헌들에 대하여 다른 성경 문서들과의 동등한 수준의 경전성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하였다. 개혁을 반대한 교황 지지파의 결정에 개혁 찬성파인 종교개혁 세력은 반발하였다. 결국 서방교회 개혁반대파였던 교황파는 개혁찬성파를 파문하였고 서방교회에서 추방을 선언했다.
결국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는 현재의 개신교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신교회에서는 공교회의 전통을 따라 외경의 정경성을 부인하고 히브리성경 24권을 재분류한 39권의 독자적인 구약정경의 목록을 확립하고 보편교회의 전통을 따라 외경을 구분하였다.
개신교의 외경에 대한 견해는 교단들의 신학사상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다. 공교회주의를 따르는 개신교 종파인 루터교나 성공회, 감리교회, 구세군, 일부 성결교회 등은 외경에 대해 '교리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지만 신앙에는 유익한 문서'로 권장했던 아타나시우스나 히에로니무스의 입장에 가까운 편이다. 부록에 달린 외경을 예배 시에 봉독하지 않지만, 신도들의 독서를 금하지는 않는다.
성공회는 구약 외경을 준정경으로 인정하여 봉독하기도 하면서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개혁주의를 따르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침례교회, 조합교회 등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결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영향을 많이 받은 개신교 교단들은 외경에 대하여 교회 독서도 금지한다.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편찬처인 '대한성서공회'의 성경번역본 구약성경에서 외경은 참조문헌 정도이다. 예배 시 사용하는 한글 성경번역본인 '개역개정 성경전서', '새번역 성경전서'에는 외경이 없으며, 교육용으로 사용하는'공동번역 성서'에만 부록으로 외경이 실려있다.
구약 전승의 특성과 구전전승
- 구약 전승의 특성
- 1) 신명기 전승(Deuteronomy, 약자로 'D') 모세의 설교 형식의 많은 권고로 만연체의 장황한 문장, 특유의 어휘와 표현들,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신실하게 지키라는 간절한 호소를 담고 있다. 이는 오경의 다른 책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신명기의 특징적 문체'이다.
- 2) 제사장 문서(Priestly Documents, 약자로 'p') 제사장 문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학 양식, 특이한 어휘와 문구 그리고 고유의 신학적 입장에 의해 다른 전승과 차별화 된다.
- 3) 고대 서사시(Old Epic Tradition) 오경에서 신명기와 제사장 문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의 자료이다. 생생한 이야기 전달 기법과 인간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그 특징으로 한다.
- 구전전승
- 1) 공적의미 : 역사가는 자기 자신에게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게 의미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선택하여 기록한다. 따라서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적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을 공적 의미로 봤을 때, 이집트의 노예집단이 파라오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된 정치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 2) 신앙적 의미 : 이스라엘의 역사를 정치적 차원에서가 아닌 신성한 의미가 가득 찬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애굽은 단순히 이스라엘 망명자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사건이 아니라 혼돈 속에 있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창조의 사건이었다. 출처 : 버나드 W. 앤더슨 - 구약성서탐구, CLC, 2017,
사해 문서의 발견
1946년에 발견된 사해 문서에서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 헬라어로만 전해진 문서들 중에서 히브리어 문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던 토빗기 등의 히브리어 판본을 발견하면서 히브리어 원문을 확인했다. 이 발견으로 에세네파에서 히브리어 원문을 보존했다고 하지만 에세네파에서 외경(제2경전)을 정경으로 수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9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바리새파가 유대교를 재정립하던 회의였던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성경의 정경 기준을 세웠고, 외경을 정경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기독교 보편교회 시기에도 외경을 신앙을 위한 독서 문헌으로 한정하였다. 11세기 교회 대분열로 서방교회가 등장하며 서방교회 자체 공의회에서 신앙을 위한 독서 문헌인 외경을 교리와 신학을 위한 정경 위치로 승격하였다.
현재는 11세기 이후의 서방교회 공의회의 교리를 따르는 천주교회만이 외경을 제2경전으로 교리와 신학을 위한 문헌으로 삼는다. 보편공의회만을 교리 기준으로 따르는 동방교회인 동방정교회와 서방교회인 개신교회들은 제2경전이나 외경으로 칭하며 독서는 가능하나 교리와 신학에 적용하지 않는 공교회(공교회) 전통을 기준으로 한다.
70년 예루살렘 파괴가 일어나기 전 작성한 사해사본에서 나온 에세네파의 정경 목록은 성전 파괴 이후인 90년에 마련한 바리새파의 히브리성경 분류법 및 목록에는 차이가 있다. 에스테르(에스더)는 정경에 없으며, 개신교에서 위경인 에녹서와 희년서, 외경인 예레미야의 편지가 포함된다. 그러나 에세네파의 정경 목록이 히브리성경처럼 구체적으로 한정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성경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에세네파 정경(현재까지 연구중) 목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쿰란 사본 4QMMT에서 제시된 4분류 법을 따른다.
1. 모세의 책들 : 창세기, 탈출기(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성전 두루마리
2. 역사서 : 여호수아, 판관기(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룻기, 에즈라 브레켐야(에스라+느헤미야), 희년서
3. 예언자의 책들 :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에스겔), 열두 소선지서, 욥기, 잠언, 아가서, 전도서, 다니엘, 에녹 1서, 예레미야의 편지
4. 시편
구성
유대교의 히브리성경와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분류법은 서로 다르나, 기본 골격과 다루는 내용은 같다. 그러나 동방정교회와 천주교회의 경우 여기에 제2정경을 성문서 범주에 더 추가하여 정경으로 인정한다. 개신교의 경우 39권, 천주교회에서는 46권, 동방정교회에서는 49~50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래의 표에서 비어있는 것은 성경의 경전에 속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히브리성경(히브리어 성경)(24권)굵게 표시된 책은 케투빔의 일부임.개신교구약성경(39권)천주교구약성경(46권)동방 정교회구약성경(50권)원어
중요인물의 역사성
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첫 번째 사람이기도 하죠. 아브라함은 우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현재로 말하면 이라크 남부지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오랜 시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100세 때 기적처럼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발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죠. 또한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나안 땅에 도착했고수 많은 자손들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어떤 인물인가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와 동생인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두 아이 중 누구에게 장자권을 줄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엔 눈이 어두운 남편 이삭 몰래 첫째인 에서에게 장자권을 주기로 결심했죠. 그러나 이를 알게 된 이삭은 크게 분노했고 어쩔 수 없이 야곱에게 장자권을 주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낳았고 후에 요셉을 애굽 땅으로 보내 총리대신이 되게 했어요. 나중에 출애굽 때 큰 역할을 하게 되는 모세 역시 야곱의 후손이었습니다.
모세는 어떤 인물인가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위대한 지도자이자 선지자였죠. 출애굽 당시 파라오(바로) 왕으로부터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10가지 재앙을 내렸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죠. 또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0년 광야생활 동안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결국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됩니다.
다윗은 어떤 인물인가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자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또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감한 소년이었습니다. 이후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사울과의 갈등으로 인해 도망자가 되었고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특히 블레셋 장군인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쓰러뜨린 일화는 아주 유명하죠. 다윗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첫 번째로는 골리앗을 무찌른 이야기입니다.
블레셋 장수였던 골리앗은 키다 2m 80m나 되는 거구였고, 갑옷 무게만도 57kg이었으며, 창날무게만 7kg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골리앗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담대 하게 나아가 물멧돌 하나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윗은 사울왕의 질투심으로부터 보호받았습니다.
사울왕은 자신의 사위이기도 했던 다윗을 시기했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지켜주셨고 오히려 사울 왕에게서 벗어나게 도와주셨습니다.
세 번째로는 다윗은 고난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한 인물입니다.
다윗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생활을 해야 했지만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네 번째로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였습니다.
다섯 번째로 다윗은 찬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다윗은 전쟁중에도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시편 150편 중 73편을 직접 작사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섯 번째로는 다윗은 용서함으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룸의 반역으로 인해 피난길에 올랐지만 시므이의 저주를 축복으로 갚아주었습니다.
일곱 번째로는 다윗은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려고 노력했으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갔습니다.
솔로몬은 어떤 인물인가
솔로몬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평화롭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화평함 속에서 백성들을 다스리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왕국 제3대 왕으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부왕인 다윗이 40년간 통치하다가 죽자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유명합니다.
잠언 삼천 편과 노래 천 다섯 편을 지었고 두로의 히람왕과는 무역을 하며 부국강병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고 알려져 있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는데 무려 7년 6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재판으로도 유명하죠. 이렇게 뛰어난 업적을 남긴 솔로몬이지만 말년에는 우상숭배라는 죄를 짓게 되는데요 이루 인해 나라가 분열되고 맙니다.
엘리야는 어떤 인물인가
엘리야는 구역성경 열왕기상 17장 -19장에 등장하는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번역되죠. 즉, 엘리야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업적으로는 이스라엘 아합과 이세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당시 북이스라엘에서는 바알숭배자들이 득세하며 우상 숭배가 만연했고, 이로 인해 가뭄 등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엘리야는 갈멜삼에서 바알신전의 제사장 850명과 대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승리함으로써 여호와만이 참 신임을 증명했죠.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언활동을 이어가단 엘리야는 호랩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때 천사가 나타나 불수레와 불말들이 이끄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대한 논쟁적인 문제들
구약성서에는 여러 가지 논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해석이 존재합니다. 일부는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일부는 이것을 신앙적으로 해석합니다.
2) 역사적 사실성 :구약성서의 일부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바다를 갈라 지나간 이야기나 여호수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야기 등은 역사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사실성이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3) 선지자의 예언 :구약성서에는 많은 예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불확실한 해석과 맞지 않는 예언들이 존재합니다.
4) 성서의 텍스트 문제 :성서의 텍스트 문제는 성서의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문맥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 여성들의 역할 :구약성서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여성들이 사회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남성들의 힘과 권력이 강조됩니다.
구약성서의 영향력
구약성서는 세계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은 구약성서에서 예언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구약성서는 서양 문학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를 들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구약성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학적 유산입니다. 또한, 구약성서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개척자들은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자신들의 사명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윤리적 문제
구약성서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유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일부 이야기들은 현대적인 윤리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의 권리가 제한되는 이야기나 전쟁과 폭력이 강조되는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현대적인 윤리와 충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가치와 중요성
구약성서는 인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문서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학적 유산이며, 인류의 정신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구약성서는 불안정한 시기와 상황에서도 인류에게 희망과 안정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는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며, 이를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신적 지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구약성서는 인류의 정신적인 성장과 성숙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자아성찰, 공동체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며, 인류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결론
구약성서는 인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문서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학적 유산이며, 인류의 정신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일부 부분들이 현대적인 윤리와는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러한 부분들은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성서는 이성과 감성, 지식과 신앙,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하나님, 자연과 인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는 구약성서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문학, 철학, 신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구약성서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또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포괄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 용서, 희생, 자비, 축복, 인내, 희망, 신뢰 등은 인류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구약성서를 통해 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약성서는 다양한 문화와 지역에서 번역되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는 구약성서가 다양한 언어와 문화, 역사와 사회, 지리와 환경 등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적인 지적 유산을 이해하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구약성경 분류와 각 책의 기본 내용
(제2경전 7권:토유마하지집바)
분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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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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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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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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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
(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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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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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인간 창조, 죄의 시작과 인류의 타락, 민족들의 분열 등 기원에 관한 내용이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등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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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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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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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탄생, 하느님의 보호 아래 모세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 그리고 시나이 계약과 성막제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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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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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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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거행하는 레위인과 사제들을 위한 지침서인 동시에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각종 신앙생활의 지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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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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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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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인도로 시나이산을 떠나 약속의 땅 입구 요르단 동쪽 모압벌판에 이르기까지 40년간의 광야의 여정이 기록된 성경이다. 민수기란 두번의 인구조사가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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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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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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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모압에서의 여정 회고, 최후의 세 설교, 죽음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의 율법을 다시 설명하기 때문에 70인역 성경에서는《두번 째 법전》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새로운 각오를 갖도록 깨우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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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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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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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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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아래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고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이다. 이로써 하느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성조들에게 하신 약속,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면서 하신 당신의 약속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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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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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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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왕정국가 수립 직전까지의 판관시대 이야기(12명의 판관 등장)
왕이 지배하기 이전의 판관에 의해 이끌어 지던 시대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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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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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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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시대 말기 다윗의 증조모 룻 이야기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내용.
다윗의 조상이 이방인 모압 여인으로 주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룻'은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의 아내로 착하고 어진 며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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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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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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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하권은 열왕기·역대기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담은 책으로 사무엘·사울·다윗임금의 스팩터클한 내용을 보여 주는 역사서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온다.
- 사무엘: 사제 엘리와 마지막 판관이며 예언자 시대를 여는 인물
※필리스티아인 : 철기를 사용하는 해양민족으로 지중해 크레타섬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팔레스타인 또는 블레셋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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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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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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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남유다 왕국의 왕으로 등극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선출된다.다윗이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을 통일한다.
※중앙집권을 위하여 남북지파의 경계선에 위치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정하고 계약궤와 사제를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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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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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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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죽음, 솔로몬왕의 등극과 성전건립, 솔로몬 사후 남북분열과 갈라진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행적 소개. 왕국이 분열하기 시작해서(BC 930경) BC 721년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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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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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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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등장, 남북 왕들의 행적 (BC722)북이스라엘 왕국 아시리아제국에게 멸망. (BC612)아시리아제국 바빌론제국에게 멸망
(BC602)바빌론 예루살렘 공격(제1차 포로) (BC592)바빌론 예루살렘 공격(제2차 포로)
(BC587)남유다 왕국 바빌론제국에게 멸망(제3차 포로) 솔로몬 성전파괴
※사마리아인: 이스라엘 멸망 후 본토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인과 아시리아 제국의 식민지 정책으로 사마리아로 이주해온 이방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상숭배에 젖어들고 악습에 물들어 후대에 유다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사라진 이스라엘 백성: 아시리아로 끌려간 포로들은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며 신앙을 잃고 민족정체성마저 잃게 된다. 결국 10지파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유다왕국 2지파(유다,벤야민)만 유다인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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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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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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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에서 다윗에 이르는 조상들의 족보로 사울의 몰락과 다윗의 치세, 성전 건축 준비내용이다. 야베츠의 기도가 있는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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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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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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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에서 바빌론 유배까지의 분열왕국시대의 역사. 솔로몬왕의 통치시대 전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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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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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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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39)바빌론제국 페르시아제국에게 멸망 (BC538)즈루빠벨 중심 1차 포로귀환 성전건립(제2성전=즈루빠벨성전) (BC458)에즈라 중심 2차 포로귀환과 개혁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과 공동체를 재건한 과정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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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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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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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혜미야 중심으로 52일만에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신앙부흥 노력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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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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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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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제국에게 패망한 후 포로로 아시리아 니네베로 끌려간 토빗 일가의 신앙 이야기.라파엘 대천사와 아들 토비야, 물고기쓸개로 토빗의 눈을 뜨게한다.
율법준수·기도·자선·가정과 결혼·자녀 사랑· 효도·죽은이들 배려·천사와 마귀 등에 대한 유다교의 가르침을 준수하며 충실한 신앙인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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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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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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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를 침공한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 유다 여인 과부 유딧의 영웅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 선민을 보호해 주시며, 아무리 큰 위기가 닥쳐도 가장 약한 도구를 쓰시어 원수들을 물리치신다는 점을 유다인들에게 확신시켜주기 위한 목적으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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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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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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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왕비가 된 에스테르가 사촌오빠 모르도카이와 함께 위험에 빠진 동족 유다인들을 구원하는 승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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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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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기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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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정경이 끝난 BC433년 후 신약이 시작될 때까지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아 '침묵의 400년'이라고 한다. 마카베오기는 침묵의 400년 즉 구약과 신약 중간시대의 기록으로 내용도 비교적 자세한 중요한 자료이다.
- BC175-BC134 마카베오 혁명: 마타티아스의 다섯 아들들이 일으킨 혁명으로 지도자는
셋째 유다였는데 그의 별명이 쇠망치(마카베오)여서 유다 마카베오라고 불려졌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가 유다지방에 그리스 종교와 문화를 강요하자 마타티아스 사제와 그의 아들들이 중심이 되어 종교의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전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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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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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기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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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기 하권의 초점은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함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해졌던 세 차례의 위험과 그 위기에서 구해주신 하느님의 업적과 유다 마카베오의 행적을 주로 적고 있다.
※12장 45절《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라는 내용은 연옥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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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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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와
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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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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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무죄한 이가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추구한다.세친구와의 담론.
욥이 시련을 겪고 깨달은 사실은 사람의 지혜란 하느님의 섭리를 다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며 경외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있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시기에 경외하여야 하며 그분만이 올바르시기에 그분을 쫓아 올바르게 살아야 함을 일깨워 준다.(개신교-네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잘못된사용)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가톨릭 욥기 8:7)
--> 이 구절은 욥의 친구들이 비아냥거리며 건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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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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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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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의 기도서이며 찬미가인 시편은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편의 유형은 탄원·감사·찬양·기타(신뢰·임금·지혜와 교훈·율법·전례·순례)로 분류할 수 있다.가장 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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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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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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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들의 지혜문학인 잠언은 생활의 지혜를 간추린 금언집으로 생활철학, 하느님에 대한 경외, 교훈과 명언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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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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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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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작가의 염세적인 심사로 이어진다.
인간의 행복은 부와 지식, 사랑, 명성, 권세 등에 있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인간의 본분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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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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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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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중의 노래》로 불리는 사랑의 노래. 부부의 사랑을 아름다운 연시로 노래한 아가는 하느님의 당신 백성 사랑, 그리스도의 당신 교회 사랑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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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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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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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지혜 문학서들 중 백미로 꼽히는 이 책은 지혜를 천상적 존재로 인격화시키면서 지혜를 알면 의인은 행복하게 살고 모르면 악인은 죽어서도 고통스럽다는 것으로 그것을 찾도록 권면하고 있다. 당시 그리스 문화와 사상의 영향으로 신앙의 위협을 느끼던 유다인들에게 전통적인 가르침을 전하며 조상의 믿음을 굳게 보존하라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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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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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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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의 아들 예수 즉「예수 벤 시라」가 저자. 지혜와 율법과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의 상호관계를 잘 조화시켜 지혜를 종합하고 있으며,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전히 이해하고 지켜서 스스로 율법과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약속의 성현들을 찬양하며 신앙인들의 덕행을 장려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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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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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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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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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왕국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 제1이사야(1~39장) - 바빌론 유배 전 활동하던 이사야 자신의 예언이 중심
다윗 후손 중에 메시아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예언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 제2이사야(40~55장) - 바빌론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의 기록
- 해방과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유배 중인 이스라엘을위로 하면서 주님께서 바빌론에서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선포한다.《위로의 책》이라고도 한다
▷ 제3이사야(56~66장) -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되어 귀향한 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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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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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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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약 40년간간 예언자로 활동하면서 거짓 예배와 우상숭배에 빠져 하느님을 멀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심판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지만, 다시 복구되리라는 희망도 선포하며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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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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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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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 애가》라고도 하는 이 책은 바빌론에 의해 참혹하게 멸망한유다왕국, 예루살렘의 참담함, 주님의 진노, 고통 중에 품는 희망, 죄의 고백,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길 탄원하는 내용을 시의 형식으로 엮은 다섯 편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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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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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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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서기였던 바룩이 바빌론에서 유배살이 하며예루살렘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기술한 것으로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그분의 인도를 받으라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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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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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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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유배지의 에제키엘 예언자의 환시. 예루살렘 함락을 기점으로 둘로 구분되는데 첫 부분은 7년동안 선포된 심판과 위협, 파멸에 관한 예언이고 둘째 부분은 15년 동안 예언된 내용으로 위로와 격려, 회복의 희망이 중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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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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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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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바빌론 포로 생활 때 사자굴에서 살아나온다는 내용의 책
역사적 묵시문학서인 다니엘서는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BC145-164)에 의해 박해를 받던 유다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쓰인 책으로 BC6~3세기 대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난과 어려운 박해의 시대에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참다운 삶의 길을 제시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겸손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바른 삶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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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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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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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 백성의 걷잡을 수 없는 종교적·도덕적 타락이 쇠락과 멸망의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 종교와 사회의 지도층을 집중 고발한다. 하느님의 사랑과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충성을 바치며 이방인들의 생활방식을 쫓아 사는 이스라엘의 행위는 간음과 같은 것이다. 주님께 돌아와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자비를 입는 아내가 되라고 호소한다. 호세아의 부인 고메르가 바람 난 여인으로 묘사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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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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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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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날』이 다가왔으니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외친다. 메뚜기떼 재앙예고
※ 이 예언은 '성령 강림의 날'을 최초로 언급한 것으로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하느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내릴 것이라고 요엘서 3장을 인용하여 설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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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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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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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들에 대한 신탁神託에 이어 이스라엘의 죄상을 고발한다. 다섯 가지의 환시로 이스라엘이 멸망의 기로에 처해 있음을 일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희망의 메세지를 전한다.북이스라엘의 쇠퇴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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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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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드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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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중 가장 분량이 적은 작품으로 총 1장 21절이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에돔민족이 약탈을 일삼으며 유다인을 괴롭히던 시대적 배경속에 씌어진 책으로 에돔에 대한 멸망심판과 유다에 대한 구원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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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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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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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에 대한 설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예언서이다. 거센 파도에 던져진 요나 큰 물고기 배속에서 사흘을 보낸 뒤 살아난다.
요나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이스라엘의 오만하고 고집스러운 모습, 즉 지나친 민족주의나 배타적 선민주의 경향을 비판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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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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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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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포로생활과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탄생할 것을 예언하는 책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예고는 신약 마태오복음 2장 4-6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구절로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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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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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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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이 쇠퇴하고 바빌론과 메디아가 세력을 확장하던 시대적 배경에서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함락과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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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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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쿡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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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쿡의 환시 속에 예언자의 항변과 하느님의 대답,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침략자들에 대한 저주, 하느님의 승리와 하바쿡의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공평하게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 앞에 모든 불의한 힘의 만행이 결코 길지 않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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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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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니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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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 다가온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면서 가나안 종교와 혼합된 우상숭배를 버리라고 촉구하며 겸손과 의로움으로 정화되리라고 경고한다. '주님의 날' 온 땅의 파멸을 예고하면서 화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회개하는 것이라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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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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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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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에서 귀향한 후, 성전을 재건하지도 못한 채 18년의 세월을 암담하게 지내던 무렵,
하까이 예언자는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는 성전을 다시 세우자고 지도자와 백성들에게 호소한다. 두번째 성전이 완성되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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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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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카르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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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재건과 함께 하느님이 억압받는 백성들에게 돌아오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련의 신탁과 8가지 환시, 그리고 겸손한 메시아가 오시어 세상에 평화를 이루시리라는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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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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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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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임금께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강복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세에게 내리신 규정과 법규를 기억하라고 권고하며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어 당신 백성을 준비시킬 것이라는 하느님의 계획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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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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